문재인 대통령이 5일 "국회 개헌 합의만을 기다릴 상황이 아닌 것 같다"며 대통령 자문 기구인 정책기획위원회에 "개헌안을 준비해달라"고 했다. 대통령은 헌법상 개헌안 발의권을 갖고 있다. 그렇다고 야당이 동의하지도 않는데 일방적으로 국가의 기본틀을 바꾸겠다고 나서는 건 권위주의 정권이나 하는 방식이다. 헌법이 개헌에 '국회 3분의 2 동의'를 조건으로 한 것은 국회 합의 없이 대통령이 일시적 인기나 분위기를 이용해서 일방적으로 헌법을 바꾸지 못하게 한 것이다.

대통령 독자 개헌안은 자유한국당 117명 의원만 반대해도 국회 통과가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독자 개헌안을 내놓겠다는 것은 개헌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야당에 개헌 불발 책임을 떠넘겨 지방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만들려는 의도일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대통령 의도와는 별개로 한국당이 지방선거 유불리를 계산하며 개헌을 외면하는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한국당은 자체 개헌안은커녕 기본 방향조차 내지 않고 있다. "6월 지방선거 동시 실시는 안 된다"는 말뿐이다. 한국당과 홍준표 대표는 작년 대선 때 '지방선거와 개헌 동시 투표'를 공약했다. 공약집에는 "승자 독식 제왕적 대통령제로 각종 부작용 발생"이라며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으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하겠다"고 적었다. 그때와 지금 '제왕적 대통령 시스템'이 뭐가 바뀌었나. 작년에는 3월에도 "5월 대선과 개헌 투표를 동시에 하자"고 하더니, 지금 와서 "충분한 논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는 건 또 무슨 모순인가.

우리는 제왕적 대통령 권력의 폐해를 수십 년간 겪었고 지금도 보고 있다. 역대 실질적 대통령 9명 전원이 죽거나 자살하거나 감옥 가거나 만신창이가 된 것 이상의 증거가 있나. 이걸 고치자고 개헌론이 국민적 합의가 됐다. 하지만 정권 잡은 여당은 대통령 권력 분산은 모른 척하고 야당은 지방선거에 불리하다고 개헌 자체를 무산시키려고 한다. 한국당은 '개헌 국민투표를 함께하면 지방선거에 불리하다'고 한다. 대의(大義)만을 좇으면 현실 정치에서 손해를 보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대의를 저버리고 소리(小利)만을 탐하면 국민의 버림을 받는다. 그게 지금 한국당 몰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