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법조계는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항소심 결과가 1심의 틀을 유지할 것으로 봤다. 1심이 적용한 법리가 합당했기 때문이 아니다. '묵시적 청탁'이란 정황 증거로 유죄를 판단한 1심은 논란을 빚었다. 그럼에도 결과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본 이유는 항소심 재판부가 판단을 뒤집을 경우 일부 세력으로부터의 거센 비난을 감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법원도 사회의 풍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정권 교체로 사법부 권력도 달라진 상황이다.

하지만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13부 정형식(57·사진) 재판장은 이런 예측을 깨고 1심과 다른 법리를 적용해 이 부회장을 풀어줬다. 예상대로 판결 직후 인터넷에선 그를 향해 "사법 적폐" "삼성 장학생" 같은 비난은 물론 원색적인 욕설이 이어졌다. 여당과 친여 시민단체 반발도 격렬하다.

그는 주변 인사들에게 "이념이나 여론에 관계없이 법리만 따지는 원칙주의자"란 평가를 받는다. 과거 주요 판례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서울고법 형사6부 재판장 시절, 2013년 한명숙 전 총리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을 깨고 징역 2년을 선고했다. 2014년에는 국회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뜨린 통합진보당 김선동 의원에게 원심과 같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서울고·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정 부장판사는 1985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수원지법 성남지원 판사로 임관했다. 서울지법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서울고법 부장판사, 서울행정법원 수석부장판사 등을 지냈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2015년 실시한 법관 평가에서 우수 법관 8명 중 한 명으로 뽑혔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장인 민일영 전 대법관과 동서지간이며 박선영 전 국회의원이 처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