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은 밤늦도록 북 치고 장구 치고 웅성웅성 붐비는 공간. 그래서 귀신이 자리 잡기 맞춤하다는 게 공연계 '믿거나 말거나' 속설이다. 극장마다 전설 같은 이야기를 갖고 있다.

서울 정동길 정동극장은 '만득이'로 불리는 어린 남자아이 귀신이 나타나는 걸로 알려져 있다. 일곱 살쯤 돼 보이는 남자아이가 밤늦게 극장 로비 어린이 놀이공간에 웅크리고 앉아 있단다. 주로 관객이 많이 든 공연 뒤에 목격된다. 한 공연계 인사는 "누군가와 얘기하고 놀고 싶어 안달이 난 아이라, 눈 맞추거나 말 걸면 달라붙어 안 떨어진단다"고 했다.

동숭아트센터 지하 '박수 치는 군인 귀신'도 유명하다. 전혀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곳에서 갑자기 박수 소리가 들리는데, 목격한 사람들에 따르면 젊은 남자 군인이란다. 특히 여자 배우가 등장할 때 크게 박수를 친다고 한다.

서울 남산예술센터엔 공연 끝난 늦은 밤 오래된 마룻바닥 위를 쿵쾅쿵쾅 뛰어다니는 귀신 이야기가 전해진다. 1962년 유치진 선생이 국내 최초 현대식 민간극장으로 연 곳이라 역사가 오랜 만큼 귀신도 고전적이다.

귀신도 미남 미녀에게 끌리는 모양이다. 잘생기고 늘씬한 남녀 그득한 국립현대무용단엔 지난해 샤워실에 귀신이 나타난다는 소문이 퍼졌다. 우리 전통음악을 가미한 공연 '제전악'을 무대에 올릴 때 그런 일이 있었다. 다행히 해코지하지는 않고 얼마 뒤 슬쩍 사라졌다고 한다. 현대무용단 한 관계자는 유학 갔던 미국서 귀신을 달고 들어 왔다고 주변에 얘기했다. 미국서 혼자 살던 방에서 누군가 허리를 감싸 안으며 어깨에 기대는 것 같은 느낌이 있었는데, 서울에 돌아온 뒤 신기(神氣) 있는 사람이 보고는 "여자 귀신이 붙었는데 한국 귀신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단다. 이 귀신 역시 키 크고 잘생긴 집안 조카가 다녀간 뒤 사라졌다.

귀신이 나온다는 장소에 극장이 터를 잡기도 한다. 이윤택의 연희단거리패 극장 '30스튜디오'는 서울 명륜동 주택가 골목에 있다. 성균관대에 유학 온 중국 여학생이 살다 화재로 숨진 뒤, 귀신 들린 집으로 소문나 흉가처럼 방치된 주택을 사들여 극장을 지었다.

공연계 한 인사는 "공연이 끝난 뒤 무대는 서늘한 침묵과 적막에 휩싸이게 마련"이라며 "관객이 떠난 뒤 배우와 스태프의 허전함을 달래주려고 귀신이 나타나는 건지도 모를 일"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