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정부세종청사 문화체육관광부 앞. 서울, 부산, 대구 등지에서 모여든 인형뽑기방 업주들이 “인형뽑기 게임에 사행성이 웬 말이냐”, “소자본 생계사업 생존권을 보장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들이 ‘생존권 보장’ 시위에 나서게 된 이유는 2016년 12월 개정된 관광진흥법 시행령 때문이다.

당시 12월 문화체육관광부는 관광진흥법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당초 오락기기였던 인형뽑기방을 게임산업법 규제 대상으로 지정했다. 인형뽑기방의 게임 난이도 조작과 고가(高價)의 경품 제공 등을 두고 ‘사행성 논란’이 커지자 내린 조치였다. 이 조치로 인형뽑기방 개설은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바뀌고, 운영시간과 경품 가격 제한 등 기준이 엄격해지자 인형뽑기방 점주들의 불만이 커진 것이다.

2017년 4월 오후 정부세종청사 문화체육관광부 앞에서 한국게임문화산업협회 소속 인형뽑기방 점주 1000여명이 모여 ‘생존권 보장 총궐기 대회’를 열고 있다.

이들의 갈등은 결국 법정 다툼으로 번졌다.

작년 3월 16일 고모씨 등 인형뽑기방 업주 64명은 문화부 장관을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인형뽑기방을 놀이 오락기구 지정 대상에서 배제한 조치는 부당하다”며 소송을 냈다. 업주들은 소송에서 “인형뽑기가 특별히 사행성이나 안전의 위험성이 있는 것도 아닌데 새 시행규칙을 부여하는 것은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행성과 모조품 생산, 확률 조작 등의 문제가 있는 만큼 엄격히 규제돼야 하는 게 마땅하다고 판단했다. 새 시행규칙에 따라 인형뽑기방은 게임산업법상 허가를 받아야지만 영업을 할 수 있으며, 그렇지 않으면 이전하거나 폐쇄해야한다.

재판부는 판결문에 "최근 학교 주변이나 번화가에 인형뽑기방이 많이 생겨났고 인형뽑기 기기의 확률 조작과 중독성으로 사행성과 유명 브랜드 인형 모조품 양산 등 여러 논란이 제기됐다"며 "이 때문에 청소년 등 피해자가 다수 발생해 인형뽑기방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도 커지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는 "인형뽑기방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공익상 필요성이 크다"고 적시했다.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돈을 마구 쓰면서 스트레스를 푼다’는 ‘탕진잼’이 유행이다. 주로 저가(低價)의 장난감이나 생필품 등을 사면서 소비의 재미를 느낀다는 신조어다. 한번에 500원, 1000원 하는 놀이인 탕진잼과 함께 급부상한 것이 바로 인형뽑기방이었다.

‘탕진잼’의 대표주자 인형뽑기방에 대해 법원이 사행성∙중독성을 이유로 규제 대상이라고 본다면 무한정으로 소비를 불러일으키는 다른 게임 등도 규제해야 하는 것일까. 양은경 조선일보 법조 전문기자와 함께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오락물과 관련된 법의 경계선에 대해 알아봤다.

Q : 인형뽑기는 단순 오락이라고 주장하는 시각도 많습니다. 그런데도 법원이 인형뽑기방에 대해 사행성이 있다고 판단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A : 법원은 인형뽑기가 ‘인형’이라는 재물을 걸고 하는 게임이고, 결과가 우연에 의해 좌우되는 측면이 크기 때문에 사행성이 있다고 봤습니다. 인형뽑기에 ‘도박’의 속성이 짙다고 본 것이죠. 크레인 조작을 해야 하므로 ‘기술’ 영역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법원은 “업주가 집게발이나 크레인 힘을 조절해 인형이 뽑힐 확률을 직접 조작할 수도 있고, 인형이 놓인 상태에 따라 뽑을 확률이 현저히 달라진다”며 확률에 의한 것이라 봤습니다.

Q : 도박죄 성립 기준이 궁금한데요. 우연성 외에 다른 조건도 있나요?

A : 물론입니다. 도박죄의 핵심은 ‘재물’과 ‘우연성’, 그리고 ‘쌍방’입니다. ①돈이든 귀금속이든 가치가 있는 물건을 걸어야 하고 ②결과가 우연에 의해 결정돼야 합니다. 결과를 확실히 알 수 있거나 당사자가 실력으로 좌우할 수 있으면 도박이 아닙니다. 또 ③당사자 쌍방이 모두 우연성이 있어야 합니다. 일방이 결과를 좌우할 수 있는 사기도박의 경우 상대편은 사기 피해자일 뿐 도박죄가 되지 않습니다.

Q : 혹시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경우도, 도박이라고 볼 수 있나요?

A :결과가 전적으로 운에 달린 경우만 도박으로 볼 지, 기량이 필요한 경우까지 포함시킬지는 항상 논란거리입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고액이 걸린 스포츠 경기입니다. 대법원은 2006년 매 홀 혹은 9홀마다 돈을 걸고 내기골프를 한 사람들에게 도박죄 유죄를 인정했습니다. ‘골프가 기량에 대한 의존도가 높지만 매 홀 경기 결과를 확실히 예견하는 것은 불가능한만큼 도박이다’라고 본 거죠. 조금이라도 우연적 요소가 있으면 도박이라고 본 건데, 엄밀한 법리 판단이라기보다는 내기골프를 무죄로 할 경우 사회적 후폭풍을 우려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있습니다.

Q : 그럼 이번 규제처럼 인형뽑기방의 인형이 소액이라면 위법의 여지가 없는 것인가요?

A : ‘게임산업진흥법에관한법률 시행령 제16조의2(경품의 종류 등)’는 경품 금액을 소비자판매가격 5000원 이내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인형뽑기 자체는 사행성이 있지만, 경품이 5000원 미만이면 사회통념상 허용할 수 있는 선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인형 가격이 5000원 미만이라면 문제가 될 게 없는 것이죠. 하지만 인기상품인 ‘피카츄’ ‘어니언스’ 인형은 공장 출고가도 5000원을 훌쩍 넘어가기 때문에 업주들은 “현실을 무시한 규정”이라고 반발하고 있습니다. 가격을 맞추려면 가짜 캐릭터 인형을 써야하고, 그러면 저작권법 위반 문제도 생기게 됩니다. 어떤 경우라도 위법의 여지가 있다보니 10년 전 만들어진 경품가 상한선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는 추세입니다.

Q :혹시 인형같은 물건 대신 "빚을 탕감해준다" 식의 조건을 걸어도 사행성인가요?

A : 네. 그렇습니다. 반드시 돈이나 귀금속이 아니더라도 경제적으로 가치가 있으면 ‘재물’에 해당합니다. 채무를 면제해 주지 않으면 그만큼 빚을 갚아야 하니까 채무면제라는 조건도 도박에서 걸 수 있는 ‘재물’이죠.

Q : 만약 타로점집이나 동전노래방 같은 곳도 무한정으로 돈을 쓰게 만드는 등 중독 가능성이 있다면 법적 규제가 가능한건가요?

A : 동전노래방에서 돈을 쓰거나 타로점을 즐기는 행위는 지불한 돈만큼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사행성이라고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단순히 중독 수준으로 돈을 쓰게 만든다고 해서 규제를 할 법적 근거는 없기 때문입니다. 지속적으로 돈을 써도 개인이 책임질 일이지 국가가 개입할 사안은 아니라는 판단에서 입니다. 다만 결과에 따라 재물이 걸린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죠.

Q : 혹시 청소년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가챠 시스템(Gacha System)처럼 어떠한 아이템이 뽑힐지 알 수 없는 ‘랜덤박스(Random Box)’ 아이템을 구입하는 게임들도 도박이라고 봐야하나요?

A :랜덤박스가 도박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특히 게임업계에서 세계적 핫이슈입니다. 지난해 말 ‘스타워즈:배틀프론트2’에서 장비와 캐릭터를 뽑는 ‘랜덤박스’형태의 유료 상품이 출시되면서 논란이 커지자 미국의 몇몇 국회의원들은 ‘랜덤박스는 도박’이라며 규제 입법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미국과 캐나다의 게임 등급 분류심사를 담당하는 한 비영리단체에서는 ‘도박이 아니다’라고 해석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 정부도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강경한 조치를 취할 태세를 보였지만 이들 국가에서도 심사기구는 도박성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도박성 자체가 고정된 개념은 아닌 만큼, 랜덤박스의 사회적 해악이 크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정부 차원에서 규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Q : 도박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일시적 오락’에 대한 법원의 판결 기준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짜장면값을 걸고 마작 게임을 한 동네 주민들이 재판에 넘겨졌으나 제주지법은 '일시적 오락'에 불과하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상습 도박과 일시적인 오락의 구분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형법 246조 1항 단서에서 ‘일시 오락’인 경우는 죄가 되지 않는다고 하고 있어 그 해당 여부는 항상 문제가 됩니다. 2009년 술값을 마련하기 위해 판돈 2만9000원을 걸고 1점당 100원짜리 고스톱을 친 남성 3명에 대해 ‘일시오락’으로 무죄판결이 확정된 사례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판돈이 적다고 모두 허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2007년 기초생활수급자 A씨가 지인 2명과 판돈 2만8700원의 고스톱을 친 사례에서는 ‘경제사정에 비춰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라며 유죄로 판단했습니다. 결국 도박의 시간과 장소, 도박자의 사회적 지위, 재산 정도, 도박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하는 거죠.

Q:다소 투기성 성격이 있는 가상화폐 ‘비트코인’ 거래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고, 우연에 의해 얻거나 잃는데 비트코인은 어떻게 봐야하나요?

A :최근 법무부가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를 추진해 논란을 빚은 것도 가상화폐 거래 자체가 도박성이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 아닌가 싶습니다. 가상화폐 자체가 어떤 가치를 표상하지도 않는데 우연에 의해 가격이 정해져 도박의 성격이 강하다고 본 거죠. 이에 대해서는 업계에서는 “수량이 한정된 상태에서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므로 도박이 아니다”라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이죠. 또 도박으로 본다면 자칫 국가가 그동안 도박행위를 방치한 데 따른 책임을 질 수도 있습니다.

비트코인이 투기적 성격이 강하지만, 이를 도박으로 정해 처벌하는 데는 여러 가지 법적 논란과 부담이 있는 만큼 쉽지 않아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