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김 경위가 왜 저기서 나와?”

어느 날 유서를 남기고 사라진 서울 강북경찰서 김영식(54·가명) 경위의 행방을 쫓은 지 11일째. 수색팀 동료 경찰들은 복잡한 감정에 빠졌다. CCTV 영상 속에서 김 경위는 검은색 패딩 차림이었다. 머리도 한쪽으로 단정히 빗어 넘긴 모습이었다. 도봉산에서 사라진 김 경위의 행적이 마지막으로 감지된 곳은 경기도 수원의 한 은행. 그는 여기서 현금 30만원을 뽑은 뒤 다시 사라졌다.

김 경위가 사라진 것은 지난달 8일이었다. 병가(病暇) 끝에 복귀하기로 했던 그가 오후까지 나오지 않았다. 자택으로 달려간 동료 경찰은 A4용지 석 장에 빽빽이 눌러 쓴 ‘유서’를 발견했다. “내 능력이 이것밖에 되지 않아 가족들에게 미안하다. 삶에 지쳤고, 돌이킬 희망이 없다. (가족들은) 앞으로 잘 살아가길 바란다.”

강북서가 발칵 뒤집혔다. 김 경위의 휴대전화를 토대로 위치추적을 해보니 도봉산 자락에서 신호가 잡혔다. 이호영 강북경찰서장이 직접 27명의 경찰 병력을 데리고 도봉산 수색에 나섰다. 해가 저물 때까지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이튿날 도봉산을 관할하는 도봉경찰서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100여 명 규모의 수색팀이 꾸려졌다. 영하 10도를 넘나드는 맹추위 속에서 수색팀은 하루가 멀다 하고 도봉산을 올랐다. 열흘이 지나도 김 경위가 발견되지 않자 “이렇게 추운데, 산속에서 버틸 수 있을까”하는 목소리가 수색팀 내부에서 나왔다.

그런데 지난달 19일 오전. 엉뚱하게 김 경위의 계좌에서 현금이 인출한 흔적이 발견됐다. 그가 사라진 다음 날인 9일 경기 의정부, 10일 경기 구리, 13일 수원시에서 20만~30만원의 돈이 빠져나간 것. 지난달 23일에는 수원의 한 은행에서 돈을 찾는 김 경위의 실물이 CCTV에서 확인됐다. 경찰이 달려갔지만 이미 어디론가 가고 없었다. 그는 추적을 의식한 듯 잠적 이후 한 차례도 휴대전화를 켜지 않았다.

그에 대한 추적과 동시에 주변수사도 이뤄졌다. 김 경위는 3년 전 이혼한 뒤로 가족과 연락을 끊고 혼자 살고 있었다. 같은 팀의 동료들은 김 경위를 “조용하고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사람”으로 기억했다. “누군가와 어울리기를 싫어했다” “경찰 생활에 염증을 느낀 것 같더라”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과수원 사업이 실패하면서 빚을 진 것 같았다”는 진술이 나왔다.

조사를 담당했던 경찰 관계자는 “김 경위가 이혼한 뒤로 트라우마가 컸던 것 같다”며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고 도봉산에 올랐다가, 여기서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고 하산(下山)한 거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 경위의 생존을 확인한 도봉서 측은 수색팀의 규모를 축소했다. 경찰은 ‘무단이탈’로 김 경위를 일단 휴직 처리했다. 이에 따라 월급도 지난 1월분까지만 지급됐다. 강북서는 추후 김 경위가 복귀하면 징계위원회를 열어 신병을 처리할 방침이다. 김 경위는 현재까지 전국을 유랑하는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