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적 한파로 전력 사용량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 중이다. 31일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최대 전력 사용량은 지난 24일 8628만㎾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고, 이튿날 8725만㎾로 신기록을 세웠다. 올겨울 정부는 기업들에 전력 사용 감축을 요청하는 '급전 지시'를 여덟 차례 내렸다. 전문가들은 "일부 발전소가 고장 등으로 가동을 중단하면 '전력 대란'이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절전에 무관심한 편이다. 한파 속에서 손님을 끌어오겠다며 문을 열어 놓고 난방기를 최대로 가동하는 상점이 많다.

◇명동 상가 20%는 '開門 난방'

31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성당 가톨릭회관에서 약 500m 구간의 매장 50곳을 둘러봤다. 9곳이 문을 열어 놓은 채 난방기를 틀고 있었다. 자동문은 주위에 사람이 없어도 항상 열려 있게 고정돼 있었다. 매장 근처에 가면 온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아침 기온이 영하 12도였던 지난 30일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문을 열어둔 곳은 주로 옷·화장품·신발가게 등이었다. 한 잡화점 직원은 "문을 닫으면 매출이 반 토막 난다. 특히 외국인은 문이 닫혀 있으면 머뭇거리다 들어오지 않아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명동10길 320m 구간엔 60여 개 상가 중 20개가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었다.

지난 30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의 한 신발 가게가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영업하고 있다. 당시 기온은 영하 3도였다. 올겨울 한파로 전력 대란이 우려되는데도 많은 상점이 문을 열고 난방기를 가동하고 있다.

다른 거리도 비슷했다. 같은 날 오후 2시쯤 서울 지하철 9호선 신논현역 6번 출구에서 2호선 강남역 10번 출구까지 800m쯤 되는 거리에 30여 개 매장 중 7개 매장이 문을 열어놓고 있었다. 한 문구점에서 아르바이트하는 김모(45)씨는 "문을 열어두면 손님이 20%는 더 많이 오는데 왜 못 열게 하느냐. 정부에서 탈원전 정책 세워놓고 그 부담을 상인들에게 떠넘기는 것 아니냐"고 했다.

이렇게 문을 열어두는 상점들은 실내 적정온도보다 훨씬 높은 온도로 난방기를 설정해둔다. 한국에너지공단에서 권장하는 겨울철 실내 적정온도는 18~20도다. 출입문을 활짝 열어두고 영업 중이던 강남의 한 옷가게는 난방기 온도를 27도로 설정해놨고, 실내온도는 22도였다. 근처의 신발가게는 난방기 설정온도가 30도였고, 실내온도는 23도였다. 한국에너지공단 관계자는 "문을 열고 난방을 하면, 닫았을 때와 비교해 전력 소비가 2배 정도 더 든다"고 했다. 상점들이 '개문(開門) 난방'을 하는 것은 한파 때문이다. 한 옷가게 사장은 "올겨울 들어 개문 난방을 하는 곳이 더 늘었다. 날이 추울수록 손님이 줄어, 한 명이라도 더 끌어오려고 문을 열어둔다"고 했다.

겨울철에는 문을 닫고 난방하면 실내가 너무 건조해져서 문을 열어둔다는 반응도 나온다. 강남의 한 안경점 직원은 "실내 공기가 답답해서 너무 추울 때 빼고는 거의 온종일 문을 열어놓는다"고 말했다.

손님들도 이를 문제 삼지 않는다. 신촌의 한 옷가게를 찾은 대학생 이모(26)씨는 "손님 입장에서도 열어두는 게 편하다"고 말했다. 강남의 한 잡화점 점원은 "문을 열어둔 채 가버리는 손님도 많다"고 했다.

◇느슨한 개문 난방 단속

개문 난방은 엄연한 단속 대상이다. 에너지이용합리화법에 따르면 문을 열고 난방한 영업점에는 최대 3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하지만 단속 빈도는 낮다. 신촌의 한 가게 점원은 "장사를 시작한 뒤로 문을 닫아놓은 채 영업한 적이 한 번도 없다"며 "단속해서 과태료를 매길 수 있다는 것도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강남의 옷가게 직원 이모(22)씨는 "여름이든 겨울이든 문을 열어놓으라고 지시받았다. 단속이 나와 과태료를 냈다는 말은 들은 적도 겪은 적도 없다"고 했다. 한 화장품가게 주인은 "문을 열면 매출이 20% 정도는 오른다. 과태료를 내더라도 문을 열어두는 게 낫다"고 했다.

단속 주체인 각 구청이 단속을 해 과태료를 물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과태료를 부과하기 위해선 산업통상자원부가 '단속 후 과태료를 부과하라'는 공문을 각 구청에 내려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단속을 해도 과태료를 부과할 수 없다. 명동을 관할하는 서울 중구청 관계자는 "산업통상자원부에서 단속 공문을 보내지 않아, 계도만 하고 있다. 지금까지 개문 난방에 대해 과태료를 물린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탈원전 문제를 논의하기 이전에 이런 에너지 과소비형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무환 포스텍 첨단원자력공학부 교수는 "전기 사용량을 줄이면 원전 몇 기를 짓지 않아도 된다"며 "전기를 무엇으로 생산하느냐 논의하기 전에 전기 사용을 줄이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