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기환송심은 결국 共謨로 인정
1~2심 "데려다 줄 때 만류했다"
대법 "자기가 하려고 재촉한 것"

지난 2016년 5월 21일 전남 신안군 흑산도에서 여교사를 성폭행한 학부모와 지역주민 남성 3명에 대한 파기환송심 원심보다 무거운 징역 10~15년형이 29일 선고됐다.

섬마을 여교사 성폭행 사건 선고 일지.

사건의 발단은 2016년 5월 21일 저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전남 신안군의 흑산도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 중이던 김모씨는 마을의 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중 음식점을 운영하는 학부모 박모(51)씨의 권유로 지역민 김모(41)씨, 이모(37)씨 등과 술을 마셨다. 한잔, 두잔 권하는 술에 이내 만취했다. 박씨는 술에 취한 여교사를 부축해 관사로 데려다주러 갔다가 여교사를 성폭행을 시도했다. 박씨를 뒤따라간 이씨와 김씨도 연이어 여교사를 덮쳤다. 박씨와 김씨는 범행을 전후로 6차례 통화를 했으며, 피고인들끼리는 “빨리 나오라” 등의 대화를 주고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의 범행은 22일 자정을 기준으로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났다. 1차 범행은 21일 저녁. 박씨 등은 총 3차례에 걸쳐 여교사를 성폭행하려고 시도했으나 여교사가 완강하게 저항하는 바람에 범행에 실패했다.

두번째 범행은 자정 이후 여교사가 완전히 잠이 든 상태에서 벌어졌다. 이씨와 김씨는 잠든 여교사를. 덮쳐 성폭행했고, 이 과정에서 이씨는 여교사의 벗은 모습을 휴대폰으로 촬영하기도 했다.

1심 법원은 그러나 박씨 등의 1차 범행을 각자 알아서 저지른 ‘단독 범행’이라고 보고 공모 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1심은 “피해자는 피고인의 가게에 온 손님이었고 이전에 피고인이 자신의 식당에서 회식을 하던 피해 여교사를 포함한 교사들을 관사에 데려다 준 적이 있는 점 등으로 미뤄 피해자를 간음할 마음을 먹고 관사로 들어갔다고 단정하기는 부족하다”고 했다.

다만 피해자가 잠든 상태에서 일어난 2차 범행에 대해선 이씨와 김씨의 공모관계를 인정했다. 이씨에 대해선 카메라를 이용한 촬영, 김씨는 주거침입 강간죄 등이 유죄로 인정됐다. 1심 법원은 박모씨, 이모씨, 김모씨에게 각각 12년, 13년, 18년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김씨의 경우 지난 2007년 대전에서 저지른 다른 성폭행 전력이 있어 다른 사람들보다 형량이 높았다.

박씨 등과 검찰은 모두 항소했다. 박씨 등은 2차 범행을 공모하지 않았다고 주장했고, 검찰은 1심이 무죄로 선고한 1차 범행(간음미수 행위)도 사전 공모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2심은 1심 판단을 유지하면서 피해자와 합의한 점 등을 감안해 박씨 등에게 각각 7년, 8년, 10년으로 감형했다.

2심은 “박씨가 여교사를 관사로 데리고 가려할 때 이씨와 김씨 등이 이를 제지하는 등 범행을 공모한 사람의 행동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조선일보DB

사건은 대법원까지 올라갔다. 원심이 무죄로 판단한 공모공동정범, 합동범을 인정할 수 있는지가 주된 쟁점이 됐다.

그러나 대법원은 지난해 10월 “원심은 합동범, 공모공동정범의 성립, 주거침입죄에 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위법이 있다”며 원심판결을 깨고 유죄 취지로 사건을 광주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들 사이에 성폭행 범행을 전후해 명시적 묵시적 합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법원은 “원심은 피해자를 관사로 데리고 간 피고인에 대해 다른 피고인들이 ‘빨리 나오라’라고 말하는 등 범행을 중지하게 한 행위에 대해 범행을 공모한 사람의 행동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지만, 간음 행위를 제지하려는 의도라기보다는 자신의 범행을 위해 재촉한 행동이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판단했다.

이어 “범행을 우선적으로 저지른 피고인은 다른 피고인의 재촉에 따라 자신의 범행을 멈추고 (다른 피고인이) 간음할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한 상태에서 관사 밖으로 나와 식당쪽으로 내려갔다”며 “이후 나체상태의 피해자에 대한 2차 간음행위가 저질러진 것을 보면 피고인들 사이에서는 피해자를 간음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고법으로 되돌려진 사건은 결국 공모관계가 인정됐다. 광주고법 제4형사부(부장 최인규)는 29일 피고인들에 대해 “평소 호형호제하며 친분관계가 두텁고, 범행 당시 수시로 전화통화를 하며 일사불란하게 관사에 갔다가 각자 집으로 돌아온 과정, 범행을 극구 부인하다가 명백한 증거가 드러날 때마다 진술을 뒤집는 태도 등에 비춰 함께 범행하기로 한 것으로 인정된다”고 했다.

재판부는 김씨에게 15년, 이씨에게 12년, 박씨에게 10년을 각각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