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18도. 마이클 케나(65)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26일은 올 들어 가장 추운 날이었다. "하필 제일 추울 때 서울에 왔느냐" 묻자 케나는 "비무장지대(DMZ)와 강원도를 다녀와서 그렇게 추운 줄 모르겠다. 나는 겨울에 사진을 찍는 게 좋다"고 했다. "잎이 다 떨어져 뼈를 드러낸 나무도 좋고, 추수가 끝난 뒤 삭막한 시골 풍경도 좋아요. 무엇보다 눈이 오면 피사체 하나에만 집중할 수 있어 더 좋고요." 동양화 그리듯 여백을 사용하는 사진작가다웠다.

이탈리아에서 찍은 작품 아래 앉아 있는 마이클 케나. 가로세로 15.3㎝의 정사각형 흑백사진을 고집해온 그는 최근 들어 가로세로 41㎝의 큰 작품도 선보인다. 케나는“인화 작업이 점점 힘이 부쳐서 작품 수를 줄이는 대신, 작품의 크기를 늘렸다”고 했다.

케나는 핀란드 작가 펜티 사말라티(68)와 겨울과 눈을 주제로 한 사진전 '스노우 랜드'를 열고 있다. 케나는 흑백 풍경 사진의 대가이지만, 한국에선 '솔섬 사진' 작가로 유명하다. 2007년 강원 삼척의 소나무숲을 촬영해 이곳을 관광 명소로 만들었다. 2011년엔 대한항공과 소송이 있었다. 대한항공 광고에 국내 아마추어 사진작가가 찍은 솔섬(정식 명칭 '속섬') 사진이 게재됐고, 케나 측이 '표절'이라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다. 케나는 "이미 지나간 일"이라며 "다만 솔섬 주위에 공장이 들어선 게 안타깝다"고 했다.

영국 서부 작은 공업 도시에서 태어난 케나는 어릴 때 신부(神父)가 되고 싶어서 신학교를 다녔다. 다른 형제들은 15세부터 생계를 위해 일해야 했을 정도로 부모는 가난했다. 케나는 사춘기를 겪으면서 "평생 금욕할 자신은 없어졌지만 창작의 욕구는 있다는 것을 깨닫고" 신부의 꿈을 접었다. 예술학교에 입학한 뒤로 상업용 사진을 찍다가 1977년부터 풍경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2012년 강원도 평창의 겨울 풍경을 담은‘산행’.

이번 전시엔 2012년 찍은 평창 풍경 한 점이 처음 공개된다. 눈으로 덮인 산에서 삐쭉 튀어나온 소나무 한 그루. 눈이 만든 여백에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파르르 떨며 그은 검은 선 때문에 수묵화처럼 보인다. 나무, 바다, 절, 성당, 교회, 공장 등이 케나의 단골 피사체. 하지만 사람은 절대 찍지 않는다. "사람이 사진에 들어간 순간, 보는 이들의 상상력이 제한을 받지요. 풍경보다 그 사람이 누군지에 대해서만 궁금해하니까요. 풍경이 보여주는 이야기에 집중시키기 위해서 사람을 넣지 않습니다."

스웨덴의 '핫셀블라드' 중형카메라와 국내에서도 5만~7만원이면 살 수 있는 플라스틱 카메라 홀가로 찍은 가로 6인치(15.3㎝), 세로 6인치 크기의 흑백 정사각형 사진은 케나의 트레이드마크다. 이번 전시에선 기존보다 큰 크기(41㎝×41㎝)의 작품을 석 점 선보였지만, 이 역시 정사각형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직사각형보다 불안정해 보이는 정사각형을 분할하는 수평, 수직, 대각선이 묘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필름 카메라만 사용하고 자신이 직접 인화하는 것도 케나 스타일이다. "같은 필름을 갖고 암실에 들어가도 사진작가들은 저마다 다른 사진을 갖고 나옵니다. 인화는 내 사진 예술의 일부죠. 조각가가 찰흙을 주무르고 돌을 깎듯 나도 사진을 매만지며 인화합니다."

그는 "느리고 불편한 걸 참아낼 줄 아는 사진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디지털 카메라는 결과물을 통제할 수 있지만, 나는 결과물을 예측할 수 없는 의외성이 좋아요. 일주일 내내 찍었는데 인화해보니 생각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도 있죠. 그런 어려움이나 도전, 실패가 없으면 예술이라고 하기 어렵죠. 셔터 한번 눌러서 원하는 결과가 바로 나오는 게 예술이라면 모든 사람이 사진작가를 하고 있겠죠?." 2월 25일까지 서울 삼청동 공근혜 갤러리. (02)738-77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