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을 필두로 한 북한 사전점검단은 원래 20일에 온다고 통보했었다. 그러나 오지 않겠다더니 또 다음날 보내겠다고 했다. 새로 알려온 날짜는 21일 일요일이었다.

이날 오전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은 아침부터 분주했다. 동료들은 경의선 육로로 내려오는 북측 점검단을 취재하기 위해 서울역에서 대기했고, 기자는 “기차표 끊어줄 테니 무조건 강릉으로 가라”는 데스크의 지시를 받고 서울역으로 냅다 택시를 잡아 탔다. 북한 사전 점검단이 탑승할 강릉행 KTX 4071편은 오전 10시 50분 출발이었다.

굳이 어떤 열차인지 확인하지 않아도 될 만큼 많은 경찰들과 취재진의 카메라가 열차 앞에 진을 치고 있었다. 현송월의 모습을 처음 보고, 운 좋게 스마트폰으로 담은 후 열차에 몸을 실었다. 가까스로 같은 열차에 올라탔지만 현송월이 앉은 8호차에는 근처도 갈 수 없었다.

7호차부터 노란 조끼를 입은 경찰들이 “여기서부터는 누구도 들여보낼 수 없다”며 제지했기 때문이다. 현송월이 평양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강릉으로 움직일 동안 국민들은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우리가 개최권을 따내고 우리가 시설 투자를 한 올림픽이다. 올림픽 축하공연단이 개최국에 와서 이렇게 오만한 적이 있었나. 우리 국민들은 북한 사전점검단이 갑자기 오겠다고 했다가 또 갑자기 일정을 취소한 이유조차 알 수 없었다.

사전점검단이 씨마크 호텔에서 점심을 먹고 나오면서 사복 경찰 사이로 꽤 가까이서 현송월을 볼 수 있었다. 그 순간을 영상으로 찍은 줄 알았는데, 나중에 확인하니 오류 탓인지 저장되지 않았다. 속이 탔다.

현송월이 시설 점검을 위해 먼저 강릉아트센터에 들르기로 했지만, 취재진의 취재 열기가 높다는 이유로 갑자기 장소를 바꿨다. 급하게 정보를 얻어, 강릉 황영조 체육관으로 달렸다.

현송월을 가까이 볼 수 있는 두 번째 기회를 얻었다. 그를 따라 곧장 체육관 안으로 들어갔다. 경호는 삼엄했지만, 예상 외로 ‘빈틈’은 있었다.

현송월은 생각보다 키가 제법 컸다. 165㎝는 돼 보였다. 공연장 후보로 꼽힌 황영조 체육관을 둘러본 북한 사전 점검단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들의 표정을 살피던 우리 측 인사가 “1년 전에 미리 알려주셨으면 새로 지었을 텐데”라고 운을 떼자, 방남 이후 극도로 말을 아끼던 현송월이 입을 뗐다. “여기에 (체육관을) 새로 지었으면 좋았을 걸...그러게 말입네다.” 현송월은 주변에 취재진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긴장을 다소 푼 듯 보였다. 이 장면은 고스란히 기자의 휴대전화에 녹화됐다.

이 영상을 송고하기 전에 다시 보니, 두 손을 모으고 현 단장의 심기를 살피는 우리 측 인사들의 모습이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현송월이 웃으면 따라 웃었고, 표정이 불편해 보이면 비위를 맞췄다. 윗사람 심기 거스릴까봐 잔뜩 눈치를 보는 측은한 ‘삼촌’을 보는 느낌이었다.

우리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들이 단일팀에 반발하자 "여자 아이스하키가 메달권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정부에 기막혀하던 2030세대들은 이 영상을 보면 어떤 감정이 들까.
강릉아트센터, 스카이베이 경포호텔로 이어지는 일정을 따라 붙으면서도 머리 속에서 그런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이날 저녁 현송월은 경포호텔의 가장 높은 19층 VIP룸으로 갔고, 기자는 1층 로비에서 혹시나 그가 나올까 밤 늦게까지 기다렸다. 그러나 끝내 나오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버튼은 식당인 1·20층을 제외한 2~19층까지 눌리지 않았다.

이튿날 강릉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일정부터는 우리 경호인력들에 막혀서 접근하지 못했다. 우리 측 인사들이 차마 꺼내지 못할 질문들을 던지고 싶었는데… 20일 방남 일정을 돌연 취소한 이유가 무엇인지, 정부의 무리한 단일팀 추진에 반대하는 국민 여론이 높은걸 알고나있는지, 급조된 ‘단일팀’ 때문에 오랫동안 땀 흘리며 호흡을 맞춰온 여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선수들이 크게 상처받았다는 걸 알고는 있는지 말이다.

지난 21일 현송월 북한 삼지연 관현악단장이 강원도 강릉시 교동에 있는 황영조체육관에서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