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15일 국회에서 열린 평창올림픽 및 국제대회 특별위원회에 참석해 "남북 단일팀은 여자아이스하키로 한정하며, 우리 선수 23명이 그대로 유지되고 북한 선수가 더해지는 '23+α'안의 기본 틀을 토대로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단일팀에 합류할 북한 선수는 5~8명 선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우리 선수들의 피해가 없을 것이라고 하지만, 출전 엔트리가 22명으로 제한된 만큼 일부 선수는 경기에서 빠져야 하고, 남은 선수도 출전 시간을 빼앗길 수밖에 없다. 팬들은 어려운 상황에서 훈련한 우리 선수들이 왜 불이익을 받아야 하느냐며 비판하고 있다.

여자아이스하키는 국내에 팀이 딱 하나 있다. 바로 국가대표팀이다. 등록 선수로 구성된 초·중·고·대학·실업 팀이 하나도 없다. 현 국가대표 대부분은 유소년 클럽에서 취미로 스틱을 잡고 또래 남자아이들과 뛰었던 선수들이다.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선수들은 올림픽 출전을 위해 젊음을 바쳤다. 남북 단일팀이 확정되면 누군가는 빙판에 서지 못하게 된다. 지난해 4월 북한과의 경기(강릉하키센터)에서 승리한 후 태극기를 바라보는 여자 대표팀 선수들.

1990년생으로 만 스물여덟이 된 대표팀 베테랑 골리(골키퍼) 신소정도 그랬다. 어렸을 때 피겨 선수를 꿈꿨던 그는 초등학교 때 유소년 클럽에서 스틱을 잡았다. 같은 또래 여자 선수들은 중 1~2가 되면서 체격이 커진 남자 선수들과의 몸싸움을 견디지 못해 스틱을 놓았다. 신소정은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고교·대학을 다니면서도 국제대회 출전 여자 대표팀이 임시로 꾸려지면 집에 보관한 장비를 주섬주섬 챙겨 부리나케 얼음판으로 달려갔다. 그는 자신의 플레이 동영상을 직접 보내는 열성을 보인 끝에 캐나다 대학으로 하키 유학을 떠났고, 2016년엔 한국인 최초로 미 여자아이스하키리그(NWHL) 뉴욕 리베터스에 입단했다. 지금 그의 연봉은 1500만원을 살짝 넘는다. 월세 내고 나면 한 달 살이가 빠듯하다.

대표팀 최고령인 한수진(34)은 연세대 기악과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 아이스하키 동호회에 매달리다 휴학과 복학을 거듭한 끝에 7년 만에 대학을 졸업하고 화려한 피아니스트 대신 차가운 얼음판의 삶을 택했다. 자비를 들여 일본에 하키 유학을 간 그는 일본에서 매일 300개씩 만두를 빚으며 생활비를 마련했다. 대표팀 최고 공격수로 평가받는 그의 직업은 '백수'다. 한수진은 "하키에 중독된 후 지금껏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여자 대표팀이 동호인들로만 꾸려졌던 시절도 있었다. 중학생, 현직 여고 교사, 레저 캠프 강사, 전직 시나리오 작가 등이 낮에는 공부나 일을 하고 밤에 얼음판으로 모였다. 후보 골키퍼 한도희와 박종아·박예은·최지연 등 현재 대표 주축이 이렇게 하다 눈에 띈 선수들이다. 신소정에게 눌려 12년째 후보 골키퍼 생활을 하고 있는 한도희는 "언니가 워낙 잘해 내가 뛸 기회가 적어 가끔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지만, 국가대표라는 명예 때문에 아직도 얼음판에 서 있다"고 했다. 그가 지난해 세계선수권 북한전에 선발로 나왔을 때 가족 모두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고 한다. 지금도 이들의 직업은 '학생 아니면 백수'다. 수입은 하루 6만원인 국가대표 훈련 수당이 전부다. 한 달 수입이 120만원이 조금 넘는다. 평창 참가 확정 이후 몇몇 기업이 후원에 나섰지만, 환경은 여전히 열악하다. 단체 훈련도 매일 오후 4시에 시작해 밤 10시 넘어서야 끝난다. 태릉선수촌 훈련 시절엔 안양·부천에 사는 일부 선수는 무거운 장비를 짊어진 채 하루 3~4시간을 지하철에서 보냈다.

한국인으로 귀화한 선수들도 '열정' 때문에 꿈을 잠시 접었다. 하프 코리안인 랜디 그리핀 희수는 듀크대 생물학대학원을, 박은정은 컬럼비아대 의과대학원을 다니다 모국에서 한국인 피가 섞인 선수를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태극 마크를 받아들였다.

대표 선수들은 단일팀 논란이 불거지면서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한 베테랑 선수는 "우리가 개인적 생각을 밝혔다가 지금까지 지원해 준 분들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는 일 아니냐"고 했다. 협회 관계자는 "우리 선수들은 올림픽에 자기 젊음을 모두 바쳤고, 그 과정에서 친구도 직업도 포기했다. 올림픽이 끝나면 더 불투명한 미래를 맞아야 한다"고 했다. 또 다른 아이스하키 관계자는 "그동안 희생해 온 모든 것이 단일팀이란 명분 앞에서 헌신짝 취급을 받는 현실이 야속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