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기 법무장관의 '가상 화폐 거래소 폐지' 발언으로 정부 내부 혼선이 커지고 있다. 청와대와 각 부처는 뚜렷한 대책은 제시하지 못한 채 서로 책임을 넘기는 듯한 모습이다. 최저임금과 아동수당 등 주요 정책 추진 과정에서 여권 전체가 난맥상에 빠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靑 지시로 대책 마련

정부가 가상 화폐 대책을 본격 검토하기 시작한 것은 작년 10월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 이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부처 간 입장이 달라 혼선이 생긴 것으로 전해졌다.

처음 대책 마련 지시를 받았던 기획재정부와 금융위, 금융감독원 등은 가상 화폐를 '제도화'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디지털 화폐 제도화 TF(태스크포스)'를 꾸린 뒤 가상 화폐 시장에 대한 자금 세탁 방지, 외환 규제 도입 등을 통해 안정시키는 방안을 검토한 것이다.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금융 당국이 가상 화폐 거래소를 인가하는 내용의 전자금융업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상 화폐 투기 열풍이 일자 청와대 기류가 강경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 부처 대신 법무부가 주무 부처로 지정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해 11월 28일 "가상 통화가 투기 대상이 되는 현실"이라며 "이대로 놔두면 심각한 왜곡이나 병리 현상이 벌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했다. 국무조정실은 지난달 가상 화폐 긴급 대책 추진 상황을 발표하면서 "가상 통화는 법정 화폐가 아니다"고 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사태가 심각하다'며 법무부에 강력한 대처 방안을 마련하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기류를 반영해 법무부는 기재부 등 일부 경제 부처 반대에도 불구하고 '거래소 폐지'라는 초강경 대책을 마련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박상기 장관의 '거래소 폐지' 발언에 대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청와대는 법무부가 두 달 넘게 만들어온 대책에 대해 "조율된 확정 안이 아니다"고 뒤집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박 장관 개인 소신에 가깝다"며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가상 화폐 과열에 대한 모니터링을 한 정도"라고 했다. 하지만 법무부에선 "우리가 혼자 한 게 아닌데 억울하다"고 했다.

◇이틀째 이어지는 가상 화폐 혼선

가상 화폐 대책에 대한 혼선은 이틀째 이어지고 있다. 청와대와 국무조정실은 이날도 대책 회의를 했지만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내부 의견 차이도 여전하다.

청와대 관계자는 "가상 화폐가 명백한 '투기'이고 광풍이 심각하다는 데 공감대가 있는 건 맞는다"고 했다. 가상 화폐 거래를 강력히 규제하는 데 무게를 둔 발언이다. 하지만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가상 화폐를 4차 산업혁명 기반 기술이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다"며 "산업·보안·물류 쪽과 연관성이 많기에 균형 잡힌 시각에서 봐야 한다"고 했다. 청와대나 박 장관의 인식과 다른 것이다.

청와대가 가상 화폐 논란에서 한발 빼고, 정부도 명확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투자자들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야 합의 뒤집는 정책 혼선도

정부가 여야(與野) 합의를 뒤엎거나 당정(黨政) 간 조율 안 된 정책을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도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10일 "아동수당에서 상위 10%를 빼지 않고 (전 계층에) 다 지급할 수 있도록 다시 시도하겠다"고 했다. 소득 상위 10%는 아동수당 지급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한 여야 합의를 뒤집은 것이다.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는 본지 통화에서 "정부가 (국회 합의를) 안 지키겠다고 하면 앞으로 (야당과) 어떻게 합의를 하겠나"며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고 했다. 교육부도 오는 3월부터 유치원·어린이집 방과 후 영어 수업 금지를 추진하려다 여당의 제지를 받았다. 학부모들이 반발하고 민주당 의원들이 항의하자 교육부는 뒤늦게 시행 시기를 늦추는 방향을 검토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