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원 기자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僞證)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형사소송법 제157조·선서의 방식)

법정에 선 증인들은 법에 따라 선서문을 작성하고 '엄숙히 기립해' 낭독한다. 시비(是非)를 가리는 법정에서 진실만을 말하겠다는 약속이다. 선서한 손을 내리면 피노키오의 거짓말이 시작된다.

#1. 윤모(66)씨는 집에서 칼을 들고 자신을 위협한 혐의(특수협박)로 기소된 남편 최모(70)씨의 재판이 열린 지난해 6월 법정에서 "남편이 칼을 들고 협박한 적은 없었다"고 증언했다. 수사기관에서 했던 진술과 정반대였다. 재판부는 윤씨 증언을 받아들여 최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수사를 맡았던 수원지검은 위증 수사를 시작해 윤씨로부터 "예전에도 가정폭력으로 남편을 신고했지만 실형을 살지 않아 계속 한집에 살고 있었다"며 "남편을 신고하긴 했지만 이번에도 갈라서지는 못할 것 같아서 재판에서는 남편 부탁대로 거짓말했다"는 자백을 받아냈다. 윤씨는 위증죄, 최씨는 위증교사죄로 함께 재판을 받게 됐다.

#2. 골동품 도자기 판매상 안모(64)씨는 지난해 9월 증인으로 출석했다.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사들인 도자기를 중국 송·원·명·청 시대 만들어진 골동품으로 속여 약 90억원을 가로챈 혐의로 기소된 일당의 재판이었다. 안씨는 "도자기 중 일부는 발굴팀이 인도네시아 해저에서 직접 발굴한 것"이라며 피고인에 유리한 증언을 했지만, 도자기 감정 결과 'Made in Indonesia'가 적힌 도자기를 비롯해 근현대 시기에 만들어진 도자기로 판명 났다. 안씨는 위증 혐의로 지난달 기소됐다.

위증죄는 판사를 속이는 범죄이자 국가의 사법 질서를 훼손하는 범죄로 여겨진다. 형법 제152조는 '법률에 의하여 선서한 증인이 허위의 진술을 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정하고 있다. 민사 재판에서 위증이 드러난 경우에는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받는다. 수사기관은 주기적으로 위증죄 집중 단속에 나선다. 수원지검은 지난해 9~12월 단속으로 위증 사범 47명을, 서울중앙지검도 지난해 1년간 집중 단속으로 위증 사범 92명을 각각 적발했다. 수원지검 이은강 부장검사는 "공판 중심주의가 강화되면서 법정 진술의 중요성은 커졌는데 의리나 정을 내세워 위증하는 일은 여전히 잦다"며 "특히 국가 상대 행정소송이나 민사소송은 검사가 직접 관여하지 않아 재판 중 적발이 어렵다는 점을 악용해 과감하게 위증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이 지난해 적발한 위증 사범 92명을 분석한 결과, 위증 이유로는 책임 회피 또는 이해관계에 의한 위증(57명·61.9%)이 가장 많았고 친분과 인정에 얽매인 위증(19명·20.6%)이 그다음을 차지했다.

검찰이 적발하는 위증 관련 범죄만 연간 3000여 건, 법원 재판도 매년 1000건이 넘는다. 수사기관은 위증 수사에 열을 올리고 엄벌하겠다고 하지만 실제 위증죄 처벌은 제자리다. 법관 판결의 가이드라인인 '양형 기준'을 정하는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2009년 위증은 징역 6개월~1년 6개월, 모해위증(남을 해칠 목적으로 위증하는 것)은 징역 10개월~2년을 기본으로 하고 개별 상황에 따라 감경, 가중 요소를 정했다. 양형위원회는 지난해 위증죄 양형 기준 일부를 개정했지만 기준 형량은 바뀌지 않았다. 10년째 변화가 없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위증이 판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경우 사법 질서라는 국가적 법익을 침해하기 때문에 엄히 처벌해야 한다"면서도 "형량을 높이는 것보다 법정에서 거짓말을 하면 작게라도 무조건 벌을 받는다는 인식이 우선"이라고 했다.

위증죄는 그러나 다른 범죄에 비해 실형이 선고되는 비율도 낮다. 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6년 법원에서 처리한 '위증과 증거인멸' 관련 형사 1심 판결은 모두 1319건인데 이 가운데 징역형 선고는 190건(14.4%)에 그친다. 집행유예(400건·30.32%)와 벌금 등 재산형(544건·41.24%)이 대부분이다. 전체 형사 범죄 징역형 선고 비율은 22.89%다. 양형위원회 원혜욱 위원(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은 "증언은 법관이 재판에서 참고하는 여러 증거 중 하나"라며 "위증이 결정적으로 재판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아니라면 위증만을 따로 엄벌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국회에서 하는 거짓말은 더욱 엄하게 처벌한다.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국회증감법)'로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형으로 다룬다. 형법에 있는 증언거부권 고지 규정이 없고 처벌도 징역형만 둬 부당하다며 헌법소원이 청구된 적 있지만 헌법재판소는 2015년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형사나 민사소송 위증은 개별 사건에서 위증의 효과가 당사자에게 미치지만 국회에서 위증은 국민에게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법은 엄하게 만들었지만 구멍이 있어 실제 처벌은 드물다는 지적도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현행 국회증감법은 회기 중 본회의 의장이나 위원장의 고발이 필수인데, 활동 기간이 끝나면 고발할 수 있는 주체가 사라져 나중에 밝혀진 위증은 잘못이 커도 처벌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회기가 끝난 뒤 밝혀진 위증에 대해서도 국회의원 10명의 연서가 있으면 고발할 수 있도록 한 국회증감법 개정안을 지난 10일 발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