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웅·주말뉴스부장

후배 A는 정신없이 바쁜 인기인. 유능하고 친화력도 좋아서 그를 원하는 모임과 정부 위원회도 부지기수였죠. 스마트폰도 두 개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사적, 공적 용도로요. 분열에 가까운 인생을 살던 그가 선배의 무리한 부탁을 들어주다 일이 꼬였습니다. 기소됐고, 3개월 실형을 살았죠. 만기 출소 후 A를 만났을 때 조금 놀랐습니다. 풀 죽은 후배를 어떻게 위로하나 걱정했는데, 오히려 눈이 맑았거든요. 하루에 한 권씩 90권 넘는 책을 읽었답니다. 사회에 있을 때는 꿈도 못 꿀 귀중한 시간이었다면서.

'잠시 혼자 있겠습니다'(어크로스刊)를 읽다가 더 놀라운 사례를 만났습니다. 7년 59일 동안 더러운 독방에 수감됐다가 1956년 풀려났다는 헝가리 의사 이디스 본. 헝가리 공산당이 말도 안 되는 스파이 혐의로 그녀를 잡아넣었는데, 파멸은커녕 현명한 정신으로 출소했다는군요.

본 박사의 '홀로 있기 비법'을 소개하죠. 우선 머리 자르기. 직접 한 올 한 올씩 끊어내어 3주 만에 자신이 원하는 커트 머리의 완성. 다음은 시의 암송과 번역. 모국어인 헝가리어를 비롯 독일어·프랑스어·러시아어·영어·이탈리아어 모두 능숙한 언어의 달인이라, 시편 하나하나를 나머지 5개 언어로 바꿔봤다는군요. 이제 그녀의 시간 사용법은 더욱 진화합니다. 끼니를 위한 빵 부스러기를 뭉쳐서 글자를 만들었다죠. 남는 건 시간이니 한 글자 한 글자씩 4000개의 글자 완성. 4000개 글자를 역시 빵으로 만든 분류 상자 26개에 보관했고, 그렇게 만든 자신만의 '인쇄기'로 시와 산문을 썼답니다. 교도관은 얼굴을 찡그리며 '당신 정상이냐' 물었고, 본 박사는 웃으며 '아니다'라고 했다는군요. 헝가리 공산당은 세상으로부터 그녀를 차단했지만, 그녀는 광기가 아니라 평화를, 절망보다는 위안을 홀로 있는 시간에서 얻었답니다.

외로움이 삭제된 시대라고들 합니다. 소셜미디어 탄생 이후 우리는 이제 고독할 틈도 없습니다. 혼자 있을 때조차 혼자가 아닌 세상이죠. 그러니 주말이라도 스마트폰을 비행기모드로 바꿔 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