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엔 미용실이 별로 없어서요. 대회 끝나고 바로 다듬었습니다."

11일 서울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평창올림픽 남자 피겨스케이팅 대표 차준환(17·휘문고)은 길었던 머리를 깔끔하게 손질한 모습이었다. 올림픽 티켓 1장의 주인공이 된 그의 얼굴엔 미소가 돌았다. 평소 '포커페이스'를 짓곤 했지만, 이날만큼은 표정이 해맑았다.

'빙판 위의 포커페이스'가 오랜만에 웃었다. 남자 피겨 올림픽 대표 차준환은 1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평창올림픽까지 컨디션을 최고로 끌어올려 멋진 연기를 펼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차준환은 지난 7일 국가대표 최종 3차 선발전 남자 싱글에서 이준형(22·단국대)을 제치고 평창행을 확정했다. 2차 선발전까지 27점을 뒤지다 막판 뒤집기에 성공했다. 당시 프리스케이팅의 마지막 순서로 연기를 마쳤던 차준환은 대기석인 '키스 앤드 크라이 존'에서 브라이언 오서(캐나다) 코치와 함께 점수를 확인한 다음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역전극을 펼쳤는지를 처음엔 몰랐기 때문이다.

"바로 앞서 연기한 준형이 형의 점수를 못 봤어요. 클린(실수를 하지 않는 것)을 한 것에 만족하고 있었는데, 관중석에서 '됐다!'라는 소리가 들려 제가 이긴 걸 알았습니다."

차준환은 대기석에서 나온 다음에야 오서 코치를 껴안으며 기쁨을 나눴다고 한다. 그날 밤 이준형에게선 '평창 가서 이름 널리 알리자 준환아. 파이팅!'이란 문자를 받았다. 차준환은 "형에게 큰 축하와 격려를 받아 감사했다"고 했다.

차준환은 11일 30여 분의 회견을 하는 동안 '연습'이란 단어를 스무 번 가까이 썼다. 1~2차 선발전(2017년 7월·12월)에서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둔 차준환은 "부진을 극복하기 위해 연습, 또 연습에 매진했다"고 말했다. "올림픽에 나가고 싶다는 기대 대신 '후회 없이 해보자'고 생각했죠. 자다가 꿈에서도 스케이트를 탈 만큼 집중했습니다."

하지만 잇단 고관절·발목 부상 때문에 슬럼프가 길어졌다. 발에 맞지 않는 스케이트 부츠도 문제였다. 차준환은 이번 시즌 들어서만 부츠를 12번 바꿨고, 두 달 전쯤 지금의 13번째 부츠를 찾았다. 피겨 선수에게 한 몸이나 다름없는 부츠에 말썽이 생긴다는 것은 이만저만한 스트레스가 아니다.

"매주 부츠를 바꿨던 적도 있어요. 지금도 완벽히 만족하진 않지만…. 이겨내야죠." 마지막 선발전을 앞두고 체중이 60㎏ 밑으로 떨어졌다는 차준환(키 176㎝)은 결국 부담감을 떨쳐내고 대역전극을 썼다.

평창올림픽 남자 피겨의 화두는 쿼드러플(4회전)이 될 전망이다. 점프가 강점인 미국의 네이선 첸(19)은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에서 최대 7차례 쿼드러플을 뛸 것으로 보인다. 차준환은 올림픽 시즌을 맞아 쿼드러플 점프를 총 3번 시도해오다 마지막 선발전에선 1번만 했다. 그는 "올림픽까지 충분히 몸 상태를 끌어올린다면 4회전 점프를 3번까지 뛸 수 있다"고 말했다.

오서 코치는 최근 차준환이 평창에서 10위 안에 들 수 있다고 예상했다. 그는 2014 소치올림픽 금메달, 2017 세계선수권 우승자인 일본의 하뉴 유즈루(24)도 지도한다. 차준환은 '올림픽 목표'를 묻자 "외국 선수들이 모두 나보다 잘하는 것 같다. 목표를 높게 잡는 것도 좋지만, 실수 없이 연기한다면 좋은 결과가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남자 김연아'라는 별명에 대해선 "나는 남자 선수고, 김연아 선배님은 여자 선수라서 사실 좀 부답스럽다"고 했다.

차준환은 당초 이달 22일부터 대만에서 열리는 ISU(국제빙상연맹) 4대륙 선수권에 나설 예정이었다. 하지만 올림픽 티켓을 확보하면서 계획이 바뀌었다. 12일 전지훈련지인 캐나다 토론토로 건너가 3주 정도 기량을 가다듬고, 올림픽 개막(2월 9일)을 앞둔 다음 달 3일 귀국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