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원 글지기 대표

라면에 넣을 달걀 챙길 때. 그 국물 미련 남아 식은 밥 찾을 때. 차려진 끼니 혼자 때우고 반찬 넣을 때. 그리고, 한밤중에 목이 마를 때…. 문 여는 일도 몇 안 되면서 뭐 하겠다고 냉장고 광고가 솔깃했을까. 칸칸이 채운 먹을거리에 눈부터 호강이다. 부피가 팔백 몇십 리터, 일없이 듬직하다. 전자레인지에 무선 청소기가 덤이라나. 물정(物情) 모를망정 값도 생각보다는 비싸지 않다.

"혜택을 다 쓰시게 되면 178만원, 한 달에 만 천원 정도만 추가하게 되면 포(4) 도어에서 파이브(5) 도어로 바뀌게 되는 거죠." 눈을 사로잡던 냉장고가 귀를 덜컥 문다. '쓰시게 되면' '추가하게 되면' '바뀌게 되는' 하고 세 번이나 거추장스러운 말을 들은 것이다. '~게 되' 식으로 말한다고 뜻이 달라지지 않는데. '쓰시면, 추가하면, 바뀌는' 하면 깔끔할 것을.

운동경기 중계방송에서도 군말이 들린다. "득점 1위로 올라서는 ○○○ 선수가 되겠습니다. 7연패 늪에 빠지게 되는 ○○팀입니다." 이미 선수로서 득점 1위인데 새삼 선수가 된다니. 일곱 번 내리 져서 이미 빠진 늪에 그제야 빠질 형편? 영 어색하다.

생방송이라 말씨 가다듬기 어렵다 치고, 글로 쓰는 엉뚱한 표현은 어찌 봐야 할지 난감하다. '런던행 비행기에서 기내지를 보게 되었는데, 거기에 더 재미있는 문장이 있었다.' 여기서 '보게 되었다'는 봐야 하거나 봐도 될 형편이라는 뜻. 한데 '재미있는 문장이 있었다'면 그냥 보았다는 얘기 아닌가. 그럼 '보았다' 해야지 굳이 '보게 되었다'고 쓸 일이 아니다.

'~게 되다'가 들어맞는 상황이 물론 있다.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 개장에 따라 당분간 크고 작은 혼란을 겪게 됐다.' 터미널 따라 항공사가 갈라져서 헷갈리는 승객이 생긴다는 말이니까.

종이 매체의 한계니, 활자의 죽음이니, 안 그래도 신문이 특히 힘겨운 나날이다. 살길은 뭐니 뭐니 해도 좋은 재료(材料)에 있지 않을까. 그게 바로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