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11일 거래소를 통한 가상화폐 거래를 금지하는 특별법을 곧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가 7시간 만에 청와대 제동으로 "추후 협의를 통해 추진하겠다"고 물러섰다. 박 장관은 애초 "부처 간 이견이 없다"며 정부 내 조율이 끝났다고 밝혔다. 청와대도 승인한 것이다. 그러나 투자자들이 들고일어나자 놀란 청와대가 "확정되지 않았다"고 발을 뺐다.

가상화폐 투자자는 300만명에 달하고 이에 관심을 가진 사람까지 생각하면 거의 전 국민적인 관심사다. 근래 경제·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중대 정책 중 하나였다. 이 심각한 문제를 놓고 후폭풍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정책을 내지르다시피 한 것도 어이가 없고, 그렇다고 한번 발표한 중대 정책을 이해 당사자들이 반발한다고 한나절 만에 뒤집은 것도 귀를 의심케 한다.

지금 가상화폐 시장은 지나치게 투기장화돼 있다. 2030 청년 세대와 직장인, 주부, 심지어 중고교생까지 투자에 뛰어들고 있으며, 하루 종일 거래 화면을 들여다보는 '비트코인 폐인'이 속출하고 있다. 성인 인구 10명 중 1명이 하루 20~30%씩 예사로 출렁거리는 초고위험 투자에 뛰어드는 사회가 정상은 아니다. 언젠가 거품이 꺼지면 개인 파산과 가계 빚 같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비화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예방적이고 선제적인 규제 조치를 취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청와대도 이런 판단에 동의했을 것이다. 그런데 발을 뺀 것은 가상화폐 거래가 7시간 만에 갑자기 정상적 투자로 바뀌었기 때문이 아니다. 가상화폐 투자자의 60%가 정권의 주요 지지층인 20~30대 연령층이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정부 발표로 대표적인 가상화폐인 비트코인 가격이 한때 30% 폭락하기도 했다. 그러자 청와대 홈페이지 등엔 "문 대통령님께 표를 던진 내가 부끄럽다" "누구를 위한 대통령이냐"는 등의 성토 글들이 봇물을 이뤘다. 규제 취소를 요구하는 국민청원에 수만 명이 참여하기도 했다. 가상화폐의 위험성은 그대로인데 지지층이 반발한다고 국가 정책을 바꾸면 나중에 이 책임은 대통령이 질 건가.

가상화폐에 대한 규제는 불가피했다고 해도 그동안 뒷북만 치던 정부가 갑자기 거래소 폐쇄라는 극단적인 최후 수단을 꺼내든 것이 적절했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어떤 정책이든 시장에 폭탄을 터뜨리듯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전 세계에서 거래를 금지한 것은 중국·러시아·베트남 같은 권위주의 정부뿐이다. 국내 거래소를 없애면 투자자들이 해외로 옮아가 가상화폐 국부(國富)가 유출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지난해 중국이 거래를 금지하자 중국 투자자들이 홍콩과 한국 등의 거래소로 대거 이동했다. 국내 투자자들을 정부의 손길이 아예 미치지 않는 해외 거래소로 내모느니 국내 거래소를 놓아두고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는 편이 현실적이고 합리적이란 견해도 있다.

가상화폐가 지닌 기술 혁신의 측면도 무시하면 안 된다. 가상화폐의 기반을 이루는 블록체인 기술은 4차 산업혁명의 기폭제가 될 미래 핵심 기술이다. 국정은 복잡한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신중하게 결정하고 추진하는 것이다. 이 정부의 11일 하루 행태를 보면 국정의 자격이 없다고 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