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전3권)

레프 톨스토이 지음|박형규 옮김|문학동네|1644쪽|3만8500원

"그렇겠지. 지금은 진실이겠지. 그것은 별문제야. 지금이 영원은 아닐 테니까."

3권짜리 두꺼운 책의 큰 줄거리는 간단하다. 귀부인 안나 카레니나가 미남 군인 브론스키를 만난다. 안나는 로봇처럼 냉담한 남편을 버리고 열정적으로 구애해 오는 브론스키에게 몸을 맡긴다. 남편과 아이를 버리고 브론스키와 함께 살아가지만 그의 사랑이 예전만 못하다고 생각한 안나는 착란 상태에 빠져 끔찍한 죽음을 맞는다.

톨스토이는 사랑에 빠졌을 때의 설렘과 그 사랑이 무너지는 과정, 오해로 빚어지는 파국을 거장의 솜씨로 묘사한다. 그 심리 묘사는 때로 '화성에서 온 여자, 금성에서 온 남자'의 소설판을 읽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남녀가 다툰다. 남자는 동굴에 들어가고 대화를 원하던 여자는 홀로 고통스러워한다.

남편 카레닌과 애인 브론스키 모두 안나와 싸운 뒤에 보이는 반응은 전형적인 남자의 것 아닌가. 톨스토이는 예리한 시선으로 이런 남녀의 특징을 약 150년 전에 간파하고 있었다. 이 작품이 지금 읽어도 생생한 이유다.

그러나 이 책이 1600쪽짜리 통속극이라면 도스토옙스키의 '완벽한 예술 작품'이라는 찬사는 없었을 것이다. 톨스토이는 전지적 작가 시점을 구사하며, 안나, 카레닌, 브론스키 같은 주요 등장인물의 심리 상태를 전달한다. 독자는 안다. 이들이 서로를 증오할 이유가 없으며, 또 깊이 사랑하고 있음을. 안나가 냉담하다고 생각하는 카레닌은 사실 안나를 배려하고 있는 것이고, 안나가 의심하는 브론스키의 사랑은 변함이 없음을. 이 남자들에겐 사회적 성공 또한 안나만큼 중요했기에 벌어진 비극이란 것을. 그러나 동시에 안나가 기댈 언덕은 브론스키의 사랑뿐이라는 것도 독자는 안다.

'안나 카레니나'의 등장인물들은 나약하다. 입으로는 다시는 보면 안 된다 말하면서도 브론스키에 대한 마음을 접지 못하는 안나. 구혼을 거절한 키티를 결코 사랑하지 않겠다 다짐하면서도 눈빛 한 번에 무너지는 레빈은 인간의 결심이 얼마나 모래성 같은 것인지 보여준다. 그리고 그 순간 책을 읽으며 독자는 느낄 것이다. 이 결함 많은 인물들이 현대인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불가항력적인 사랑을 소재로 톨스토이는 인간의 본질에 다가선다.

왜 새해에 이 책을 권하는가. 그것은 인간의 독선이 어떻게 파국을 가져오는지, 인간이 다른 인간을 이해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려주는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각자 옳다고 믿고 행동하는 것이 타인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일상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안나 카레니나'가 첫 문장부터 말하는 불행한 가정과 행복한 가정의 이야기는 그에 대한 힌트다. 마침 러시아 같은 맹추위가 찾아온 2주. 이 책을 읽기 최적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