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일 도시·교통 전문기자

사흘 전 서울 종로에 중앙버스전용차로가 개통됐다. 세종대로 사거리부터 흥인지문까지 2.8㎞, 즉 광화문~동대문 구간이다. 버스 승객은 한결 빨리 가게 된 반면, 일반 차량 속도는 더뎌졌다. 이와 함께 횡단보도가 대폭 늘었다. 서울시는 "도심 교통 체계를 대중교통과 보행자 중심으로 전환하는 시작점"이라고 했다. 종로와 광화문은 그만큼 상징적인 곳이다.

52년 전인 1966년, 광화문은 우리 교통사에서 또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광화문 지하보도 준공이다. 지금 생각하면 차에 밀려 사람이 땅속으로 쫓겨간 형국이지만 당시의 의미는 달랐다. 서울시사(市史)편찬위원회가 쓴 서울지명사전은 '보행자는 안전하게 건널 수 있고, 차량은 신호대기 시간을 단축하게 되었다'고 적었다. 성장과 효율의 상징이었다. 이후 전국에 지하보도와 육교가 앞다투어 건설됐다. 그러면서 그만큼의 횡단보도가 사라졌다. 잇단 지하철 건설로 생긴 역(驛)의 지하도들도 횡단보도 지우기를 가속화시켰다.

광화문 네거리에 횡단보도가 재등장한 것은 33년 지난 1999년이다. 녹색교통운동이 "걷고 싶은 거리는 그만두고, 걸을 수 있는 도시에서 살고 싶다"며 6년간 호소한 끝에 이뤄냈다. 비록 사거리 네 방향 가운데 한 곳에만 그어졌지만 우리나라 보행권 운동의 상징이 됐다. 녹색교통 임삼진 전 사무총장은 "복원은 불가능해 보였다. 도저히 무너뜨릴 수 없는 장벽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아무튼 '차가 아니라 사람이 우선'이라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네 방향 모두 복원된 것은 다시 6년이 지나서다. 이후 보행자가 늘면서 식사와 쇼핑 문화가 달라지고 상권이 변화했다. 사람들은 편히 움직이며 도시를 즐기게 됐다. 흔적 없이 사라졌던 전국의 횡단보도들이 광화문을 출발로 하나 둘 부활하기 시작했다.

세종대로 4거리부터 흥인지문 교차로까지 2.8㎞에 이르는 종로 버스중앙전용차로가 개통된 2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일대에서 버스들이 운행되고 있다.

민선 시장들도 기여했다. 특히 이명박·오세훈 시장 때 청계고가 및 육교 철거, 시청앞·광화문 보행자광장 조성 등 진전이 컸다. 박원순 시장도 '걷는 도시 서울'을 강조한다. 서울시립대 정석 교수 같은 이는 '걷는 도시'의 첫 과제로 횡단보도의 전(全) 방향 복원을 꼽는다. 그는 도시에서 막힘 없이 걷는 것을 우리 몸의 혈류(血流), 즉 활력에 비유하며 "시장과 경찰청장이 모든 교차로에 횡단보도를 완벽히 설치하겠다고 선언한다면 얼마나 멋지겠는가"라고 말한다.

실제로 보행 사각지대는 아직 널려 있다. 가장 심각한 곳이 지하상가 주변이다. 서울 도심만 해도 남대문시장과 북창동 사이, 명동 롯데영플라자 앞 등 쉽게 볼 수 있다. 지하상가 출입구를 찾아 오르내리는 수고를 피할 길이 없다. 상인들을 상대로 한 서울시 나름의 노력은 있었으나 성과는 없었다. 에스컬레이터 설치 등으로 접점을 찾은 청주시의 선례, 시경과 합심한 설득 끝에 작년 말 지하상가 위 횡단보도 설치를 마무리한 인천시의 성공을 참고했으면 한다.

지하상가와 무관하게, 횡단보도가 있을 법한데 놓지 않아 무단횡단이 일상화된 곳도 적잖다. 서울 청계천의 평화시장과 신평화시장 사이 대로의 경우, 신호대기 차량들 앞을 행인과 오토바이들이 여유롭고 익숙하게 가로질러 다닌다. 대구도 만촌네거리~장원맨션 사이 도로를 보면, 당국이 "횡단보도를 놓기엔 좀 위험한 곳"이라며 손을 놓은 사이 8개 학교 학생과 주민들의 아찔한 횡단이 여러 해 거듭되고 있다.

지시와 예산만 있으면 되는 손쉬운 것 말고, 장기 미제부터 풀겠다는 의지 없이는 '걷는 도시'는 절반의 성공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