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문인 심노숭(沈魯崇)은 요즘 말로 페미니스트였다. 동갑내기 아내를 서른에 잃자 한 달 넘게 잠을 못 이뤘다. 심노숭은 그 후 2년간 아내를 추모하는 시(詩) 26편, 글 23편을 남겼다. "아내를 잃고 너무 슬퍼하는 자는 세상에서 비웃는다"는 말이 나돌던 시대라 손가락질받을 일이었다. 아내 무덤을 지키던 심노숭은 어떤 때는 한 번 곡(哭)해도 눈물이 나는데, 어떤 때는 아무리 곡을 해도 눈물 한 방울 안 나는 게 이상했던 모양이다. '눈물은 눈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마음에 있는 것인가' 눈물에 대한 그의 사유는 철학적 경지까지 이르렀다.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남 앞에서 왕왕 울 수 있는 남자는 수상쩍다고 했다. 별로 슬프지도 않은데 남 앞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은 슬픔의 양과 질 문제가 아니다. 슬플 수 있는 행위와 능력의 문제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의 감정과 생각을 '진정성'으로 포장하는 수단으로 눈물을 활용하기도 한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등 사법 책임자 4명이 그제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을 다룬 영화 '1987'을 함께 봤다. 법무부와 행안부에선 1주일 전부터 영화 관람 계획을 알리고 보도 자료까지 냈다. 1987년 서울대생 박종철군이 물고문받다 사망하자 검찰과 경찰이 이를 축소·은폐하려다 발각돼 6월 민주화 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영화를 본 후 문무일 검찰총장은 "국민 염원을 배우고 깨닫고 간다"고 했고, 이철성 경찰청장은 "잘못된 공권력에 대해 성찰하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이 청장은 연세대생 이한열군이 경찰 최루탄에 맞아 쓰러지는 장면이 나오자 훌쩍였다고 한다.

▶이 정부에는 공개적으로 눈물 흘리고 이를 알리는 사람이 유독 많다. 며칠 전엔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이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제천 화재 현장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이 "'유가족의 욕이라도 들어드리는 게 대통령이 지금 해야 할 일'이라며 돌아오는 차 안에서 또 울먹이신다"고 썼다. 문 대통령은 '광해-왕이 된 남자' '택시운전사' '판도라' 같은 영화를 본 뒤에도 울었다.

▶보통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눈물 흘리는 건 공감(共感)의 미덕이다. 하지만 사법 수장(首長)들이 이벤트 벌이듯 영화 관람하고 훌쩍거리는 것은 '쇼'한다는 느낌을 준다. 조사받던 피의자들이 자살을 선택할 만큼 강압 수사는 여전하다. 오죽하면 지난달 같은 식구인 고검 검사까지 극단적 선택을 했을까. 눈물 훌쩍이며 영화평 하기에 앞서 자신들부터 법을 이용해 보복 폭력이나 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