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만에 국내 무대에 다시 오르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는 동명의 원작 영화(2000)가 지닌 명성만큼이나 무대에서 그 가치를 십분 발휘하는 작품이다. 2005년 런던에서 초연한 오리지널 연출과 무대를 그대로 따온 버전으로, 영국 음악가 엘튼 존의 아름다운 선율과 영국 최고의 안무가로 꼽히는 피터 달링의 창의성은 국내 배우들의 몸을 거쳐 화려하게 다시 한 번 꽃피운다.

시선을 사로잡는 건 등장인물 누구 하나 버릴 것 없이 촘촘하게 짜인 드라마틱한 안무. 이 작품으로 영국 권위의 올리비에상, 미국 토니상 안무상 등을 받은 피터 달링은 탭댄스·발레·아크로바틱을 섞어 뮤지컬이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기교와 테크닉을 선보인다. 안무·연출·노래의 3박자 조화가 몰입도를 끌어올린다.

주인공 빌리와 성인 빌리와의‘드림 발레’장면.

생계를 위해 피할 수 없는 파업을 선택하는 1980년대 가난한 영국 탄광촌. 노동자 계층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인 복싱 대신 발레를 꿈꾸는 빌리의 앞날은 한 치 앞도 보기 어려운 갱도같이 어둡기만 하다. '앵그리 댄스'를 통해 자신이 진짜 무얼 좋아하는지 내면을 분출하고, 미래의 자신인 성인 빌리와의 2인무인 '드림 발레'를 통해 빌리는 성큼 성장한다.

무엇보다 이번 작품이 갖는 미덕은 공연 전 1년 반 동안 철저히 준비한 주인공 빌리들의 완성도다. 아이들이기 때문에 '아직은 성장 중'이긴 하지만, 3시간을 거의 오롯이 끌어가는 집중력은 성인들을 눈물짓게 하는 데 충분하다.

요즘엔 점점 퇴색돼 가는 사회적 가치를 돌아보게 하는 것도 이 작품을 꼭 한 번은 봐야 할 이유다. 무엇이 되고 싶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자각'하는 빌리와 마이클이 그렇고, 빌리의 재능을 알아봐주고 이끌어주는 '스승' 미세스 윌킨스, 자신의 옳음을 강요하기보다는 아이에게 귀 기울여 마음을 바꾸는 용기의 아버지, '희망'이 된 빌리를 위해 부족한 주머니도 탈탈 털며 응원하는 공동체 의식까지…. 직조하듯 궤를 맞춰 경찰과 탄광촌 파업 노동자들이 벌이는 긴장감 있는 댄스는 시대상을 미학적으로 구현해냈다.

파업에 실패한 광부들이 다시 갱도를 향하는 장면은 무대 연출이 가장 돋보이는 대목. 빌리의 아버지와 동료는 어두운 장막 아래로 사라지지만, 그들이 쓴 헤드램프는 마치 빌리의 앞날을 밝히는 듯 긴 여운으로 비친다. 빌리의 합격 통지서와 대비돼 비장미는 최고조에 달한다. 서울 신도림 디큐브아트센터, 내년 5월 7일까지. (02)577-1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