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타워크레인 조종사(운전사) 4300여 명 가운데 2600명이 소속된 민노총이 건설사 등을 압박해 일감을 따내고 있다. 일감을 주지 않으면 회사 앞에서 시위를 하고, 꼬투리를 잡아 고소를 한다. 타워크레인 키를 높이는 일(인상 작업) 등 위험한 작업을 거부한다. 건설사는 이런 작업 때마다 대타 조종사를 구해 투입해야 하는 실정이다. 이런 관행이 최근 잇따르는 타워크레인 붕괴 사고의 원인 중 하나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8일 1명이 숨지고 4명이 다친 경기도 평택 타워크레인 붕괴 사고 때도 원래 조종하던 민노총 소속 조종사(48)가 작업을 중단하는 바람에 임시 교체 투입된 비조합원 조종사(33)가 운전하다 사고가 난 것으로 확인됐다.

노조원 고용 촉구 시위 - 지난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진동 대형 건설사 건물 앞에 민노총 조합원 100여 명이 모여‘노조원 고용 촉구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아파트 건설 현장에 투입될 9명의 타워크레인 조종사 중 최소 6명을 민노총 소속 조합원으로 채용하라고 요구했다.

26일 아침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3번 출구 앞에서 한노총 타워크레인 설·해체노동조합 조합원 300여 명이 '생존권 사수 결의 대회'를 열었다. 이날도 "타워크레인 안전사고 배경에 민노총의 무리한 일감 요구와 위험한 작업 거부"가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폭력 시위로 지키는 기득권

지난 20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청진동 한 건설사 건물 앞에 민노총 조합원 10여 명이 모여 '노조원 고용 촉구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아파트 건설 현장에 투입될 타워크레인 조종사 9명 중 최소 6명을 민노총 소속 조합원으로 채용하라고 요구했다. 건설사 관계자는 "민노총 소속 조종사 4명을 고용하고, 나머지는 한노총 소속과 비조합원 조종사로 채우는 협상안을 하도급업체에서 제시했지만 민노총이 거절했다"고 했다.

건설업체들이 민노총 조종사들을 거부하기 쉽지 않다. 민노총은 건설사·타워크레인 임대업체에 조합원 채용을 요구한다. 회사가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민노총은 건설 현장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어 공사를 방해한다. 원도급·하도급업체 앞에서 장기 시위하는 방법을 쓴다. '고발 전담팀'을 운영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거리가 될 자료를 모아 노동청에 고발하기도 한다. 쉬는 시간에 근로자들이 잠깐 안전모를 벗고 있는 사진 등을 자료로 보낸다. 민노총 조종사들은 "월급은 업체가 줘도 인사권은 노조가 갖고 있다" "비조합원은 우리가 허락해야 타워크레인에 탈 수 있다"는 말을 공공연히 한다. 타워크레인 임대업계 관계자는 "민노총 소속 조종사 비용이 비조합원 조종사의 두 배지만, 민노총 눈 밖에 나기 싫어 민노총 소속 조종사를 주로 채용한다"고 했다.

민노총, 위험한 일에 '대타 기사' 요구

타워크레인 인상 작업이나 설치·해체는 난도가 높고, 변수가 많아 원래 운전하던 기사가 운전대를 잡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민노총은 2014년 수원 건설 현장에서 타워크레인 조종사가 사망한 뒤부터 위험하다는 이유로 이런 작업 때 운전을 전면 거부하고 있다. 고용 계약 때부터 이런 조항을 넣는 경우가 많다.

건설사나 타워크레인 운영업체는 민노총 소속이 아닌 조종사를 임시로 구해 설치·해체·인상 작업에 투입하고 있다. 하지만 새로 투입된 조종사는 처음 타는 타워크레인의 특성을 파악하는 데 애를 먹는다고 한다. 한노총 타워크레인 설·해체노동조합 정회운 위원장은 "설치·해체 작업자들의 안전을 고려한다면 원래 조종사가 운전해야 한다"고 했다. 민노총 건설노조 측은 "설치·해체 작업자가 소속된 업체에 타워크레인 조종사가 따로 있는 경우가 많고, 이들 조종사가 같은 업체 소속 작업자와 일하는 게 더 좋다"며 "이 때문에 우리가 운전하지 않아도 문제가 없다"고 했다.

건설 현장에서 민노총 소속 조종사들은 공사 현장에서 자재 등을 관리하는 협력업체로부터 돈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한 철근업체 팀장은 "민노총 소속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이 월급 외에 매달 1000만원을 가져간다고 해서 '월천 기사'라 부르기도 한다"고 했다. 업체들이 제때 상납하지 않으면 조종사들은 작업 속도를 일부러 늦춰 공기를 늘리는 식으로 압박한다.

민노총 건설노조 타워크레인 분과는 지부별로 조합 가입비로 200만~300만원을 받는 경우가 있다. 이런 가입비가 부담스럽고, 각종 시위 등에 동원되는 것이 싫은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은 한노총에 들어가거나 아예 조합에 가입하지 않는다. 민노총에서 탈퇴한 타워크레인 조종사는 "민노총에 가입하면 돈은 좀 더 벌 수 있지만, 과격한 노조 활동에 거부감을 갖는 이도 적지 않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