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화재 참사에서 가장 어이없는 것은 현장에 출동한 소방구조대원들이 건물 구조조차 몰랐다는 사실이다. 화재가 발생한 스포츠센터 건물 한 귀퉁이에는 재난 때 대피할 수 있는 비상 출입문과 계단이 있었다. 3층 남자 사우나 이용객들은 불이 난 지 7분 만에 이발사의 안내를 받아 이 비상 통로로 빠져나왔다. 그런데도 현장에 도착한 소방대원 4명은 건물에 매달린 사람이 뛰어내릴 에어매트를 까느라 시간을 허비하다가 40여분 만에야 이 통로를 찾아 들어갔다. 그사이 2층 여성 사우나에 있던 20명은 목숨을 잃고 말았다. 통탄할 일이다. 누군가 단 한 명만이라도 먼저 비상 통로 위치부터 파악할 생각만 했어도 이런 어이없는 떼죽음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문제의 스포츠센터 건물주는 지난달 말 민간업체에 위탁해 소방 점검을 했다. 해당 업체는 스프링클러 배관 누수, 화재 감지기 고장 등 수십 군데 문제가 있다고 판정했다. 그런데 여성 사우나의 경우엔 영업 중이라는 이유로 점검을 생략했다고 한다. 그때 점검했으면 여성 사우나 비상구가 막혀 있었다는 사실을 즉각 파악했을 것이다. 하루 수백~수천 명이 이용하는 다중 이용 시설의 소방 점검이 이렇게 건너뛰기 식으로 이뤄졌다. 소방 점검에서 불법이 적발돼도 매년 수십만원 이행강제금을 내고 버티는 곳이 한둘이 아니라고 한다. 이번 화재 건물은 스프링클러가 고장 났는데도 방치했고 비상구엔 잡동사니들을 쌓아뒀으며 불법 용도 변경을 했다. 불법 주차된 차량들로 소방도로는 확보되지 않았다. 당국은 불법을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 불법 주차 문제만 해도 지난 3월 법안이 제출된 이후 9개월째 국회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공동주택에 소방차 전용 주차 구역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안은 1년도 넘게 잠자고 있다.

이런 근본 문제들을 놔둔 채 정치권은 유치한 말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현장을 방문해 울었다고 홍보했다. 야당은 또 이런 대통령을 비난한다. 이 악순환에서 우리 사회를 구해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