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의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慘事)는 29명이나 인명 피해를 낼 사고가 아니었다. 수십 층도 아니고 8층 건물에서 난 화재였다. 신고 7분 만에 소방차가 현장에 도착했다. 그런데도 소방관들이 구조를 위해 건물 안으로 들어간 것은 출동 후 40분이 지나서였다고 한다. 소방 당국은 '1층 불길을 잡지 않으면 2층 접근이 어렵고, 1층 가스 탱크 폭발 위험을 조치하느라 늦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가스 탱크 처리와 별도로 인명 구조를 위한 팀을 구성하고 2층 진입을 시도할 수 없었는가. 물론 불길 속에 진입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각종 장비를 갖춘 소방관들의 진입이 정말 불가능했는지 너무나 안타깝다.

2층 여성 사우나의 강화유리창만 깼으면 이 한 곳에서만 20명이 숨지는 참사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독가스를 삼키며 필사의 몸부림을 치고 있는데도 소방관들은 밖에서 물만 뿌렸다. 아내를 잃은 60대 남편은 "아내에게 전화했더니 '망치로 유리를 깨려는데 안 깨진다'며 절규했다"고 했다.

소방서 사다리차와 굴절차가 골목길 불법 주차 때문에 지체된 사이 민간 사다리차가 건물에 접근해 3명을 구조했다. 뒤늦게 소방서 사다리차가 구조해낸 것은 1명뿐이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화재 때마다 불법 주차가 문제 되는데 하나도 고쳐지지 않는다. 소방 도로를 막은 동네 주차 차들은 이번에도 방치돼 있었다. 물론 스프링클러는 작동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많은 건물 스프링클러가 엉터리라는 사실은 다 알지만 그냥 넘어가고 있다. 비상경보 시스템도 무용지물이었다.

건물 외벽은 불만 대면 활활 타는 드라이비트 외장재다. 2015년 1월 130여명이 죽거나 다친 의정부 화재 때도 드라이비트 마감재 때문에 불이 순식간에 건물을 덮었다. 제천 스포츠센터는 드라이비트 규제 이전에 지어졌지만 위험하다면 이런 건물도 일정 기간을 주고 그 안에 뜯어내도록 해야 했던 것 아닌가. 전국 30층 이상 건물 2107동 가운데 135동이 아직도 외벽이 드라이비트 등 가연성 마감재라고 한다.

세월호 이후 대한민국이 한 것은 참사를 정치에 이용한 것뿐이다. 잠수함 충돌과 같은 괴담이나 만들고 정치인은 죽은 학생들에게 "고맙다"는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했다. 특별조사위원회도 국민 안전이 아니라 정치 한풀이일 뿐이다. 지난 8월 화재가 난 두바이 86층 아파트도 가연성 외장재를 썼지만 경보가 바로 울리고 방화벽이 작동해 한 사람도 희생이 없었다. 당국이 유능하게 일하면 사람이 허무하게 죽지 않는다. "이 나라에 살고 싶지 않다"는 희생자 남편의 울부짖음에 많은 이가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