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 초, 회사 선후배들을 모시고 집들이를 했다. 좁은 집에 20명 가까운 사람이 들어차 거실은 물론 작은방까지 상을 폈다. 아내는 물론 장모님과 처남댁까지 출동해 음식을 장만했다. 그러실 필요 없다고 했지만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러실 필요 없다는 나의 말은 진심이었고, 그렇게 해야 한다는 장모님의 말씀도 진심이었다. 어느 쪽이 옳거나 그르다고 말할 수 없었다.

동료들과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들며 회사에서와는 다른 시간을 보냈다. 자정 가까이 됐을 때 대부분 사람들이 일어섰고 몇 명이 모여 앉아 남은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아내를 안방에 들여보내고 남은 사람들과 어울리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새벽 3시. 네 명이 거실 한쪽에 여전히 앉아 있었다. 가장 고참 선배가 말했다. "일어났냐? 라면 좀 끓여오지." 라면을 끓여다 줬더니 다들 맛있게 잘도 먹었다. 동트기 전에 모두 일어났다. 아침상 내오라고 할 줄 알았는데 다행이다 싶었다. 다음 날 아내는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았다. 집들이라는 게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집들이에 남편 직장 동료들이 많이 와줬으니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아마도 전자였을 테지만.

얼마 후 아내 직장 동료들이 집들이한다며 찾아왔고 대동소이한 일이 벌어졌다. 나는 다음 날 설거지와 청소를 하면서 생각했다. '집들이에 아내 동료들이 저렇게 많이 왔으니, 아마도 직장 생활을 잘하는 모양이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서로의 직장 동료들과 알게 됐고 가까워졌다. 집들이를 해서 좋았다.

요즘 회사 후배에게 집들이 안 하느냐고 물으면 대단한 실례인 모양이다. '관계의 권태'를 의미하는 '관태기'가 20~30대 직장인들 사이에 퍼지고 있다고 한다. 그 현상을 지적하는 기사 속 "나의 사적 공간을 직장 상사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말이 유독 맘에 걸렸다. 그게 아닌데. 후배의 사생활을 보고 싶어서 집들이하자는 게 아닌데. 주 5회 하루 8시간씩 보는 사이니까, 이왕이면 좀 더 친해지자는 뜻인데 말이다. 어쨌든 앞으로 집들이 갈 일은 없을 것 같다. 흘러간 옛 추억이 돼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