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한 뉴욕특파원

한국식 교육을 부러워했던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이른바 '문재인 케어'를 밀어붙일 수 있는 한국의 의료제도를 알았다면 의료가 더 부럽다고 했을 것이다. 전 국민이 건강보험 가입자인 데다 보험료도 싸다. 3000원만 내면 예약 없이 전문의 진료를 볼 수 있다고 하면 미국인들은 믿지 않는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건보 적용이 안 되는 비급여 항목을 '적폐' 철폐하듯 없애려는 것 같다. 그런 식이라면 아예 전 국민 무상 의료가 더 좋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무상 의료가 제대로 작동하기는 너무 어렵다. "아픈 국민은 국가가 다 치료해주겠다"고 선언한 베네수엘라는 경제가 파탄 나 병원엔 의사가 없고, 해열제 한 알 구할 수 없다. 공공 의료가 발달한 영국도 정작 전문의를 만나려면 서너 달 기다릴 각오를 해야 한다. 급한 사람은 비싼 사설 보험에 가입하거나 다른 나라에 가서 진료를 받는다.

10%가 넘는 미국인은 건강보험이 아예 없다. 오바마 대통령은 오바마 케어로 '전 국민 건강보험 가입'을 이루겠다며 보조금을 늘리고, 보험 미가입자에게 벌금을 매기는 '강제 조항'까지 밀어붙였다. 그러나 14%였던 건강보험 미가입자를 11%로 줄이는 데 그쳤다. 비싼 의료비와 미국 특유의 자유주의, 국민 개개인의 이기심 벽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혈액 검사 한 번에도 1000달러가 훌쩍 넘는데 보건 당국은 '수가를 조정하자'고 나설 수 없다. 미국 의사들은 2~3분에 1명꼴로 진료하는 한국 의사들의 '중노동'을 절대 감내하려 하지 않는다. 한국에선 건보 적용 약값을 1원 단위까지 보건 당국이 결정하지만 미국에선 1만원 하던 약값을 제약사가 하루아침에 200만원으로 올려도 막을 방법이 없다. 심지어 국가가 부담하는 극빈층 대상 건보인 '메디케이드' 환자를 아예 받지 않는 병원도 있다.

4인 가족 월 2000달러는 돼야 괜찮은 보험인 미국에서 오바마 케어가 지원하는 저가 보험은 환자의 본인 부담 진료비가 너무 많이 들어 허울뿐이다. 국민도 그런 오바마 케어를 외면했다. 병원에 갈 일 없는 젊고 건강한 사람들은 보험에 가입하지 않고 벌금 내겠다며 버텼다. 그러다가 오바마 케어를 당장 폐기하겠다고 공약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자 '오바마 케어' 가입자가 갑자기 늘어나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비급여를 대폭 줄여 보장률을 70%까지 올리겠다는 '문재인 케어'를 건보 재정이 고갈될 것이라며 비판하려는 게 아니다. 우리 건보가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제도로 평가받을 수 있게 된 건 다소 불공평하게 여겨지는 보험료라도 묵묵히 납부한 국민과 '영리 활동'을 심각하게 제한당하면서도 '공익적' 건보 진료를 해온 우수한 의료진·병원 덕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공익은 자유와 희생의 아슬아슬한 힘겨루기에 의해 유지된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순간 심각한 불공정으로 바뀌고 판이 깨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