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 언론정보학과 이인희 교수는 얼마 전 커뮤니케이션 과목 강의를 끝내고 성적을 매겨 교무처에 넘겼다. 그러자 교무처에서 "여학생들에게 성적이 후하다"고 지적했다. 상대평가라 성적 상위 40% 학생에게 B+ 이상을 줄 수 있는데, B+ 이상을 받은 학생이 다 여학생이었던 것이다. 수업을 듣는 학생들 남녀 비율은 비슷했다. 이 교수는 교무처에 평가 자료를 보여주며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女, 수학도 男 앞질러

여학생들이 남학생보다 공부 잘하는 현상이 초·중·고·대학 할 것 없이 대부분의 교육 현장에서 나타나고 있다. '여학생들이 국어는 잘하지만, 수학·과학은 남학생에게 뒤처진다'거나 '여학생은 내신에 강하지만 수능에선 남학생이 더 강하다' 같은 오랜 통념도 깨지고 있다.

본지가 지난 2011~2018학년도 수능 표준점수 남녀 평균을 비교한 결과, 여학생들은 국어·영어 영역에서는 한 해도 빠짐없이 남학생을 앞질렀다. 2014학년도부터는 수학에서도 여학생이 남학생을 앞지르는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 치러진 2018학년도 수능에선 국어와 수학나형에서 여학생이 남학생을 앞질렀다. 우리나라 여학생들은 또 72개국이 참여한 '2015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도 읽기·수학·과학 전(全) 영역에서 남학생들을 앞질렀다. 학교 내신 경쟁에서 주눅이 든 남학생들이 남녀공학 학교를 기피하는 현상도 뚜렷하다. 서울의 한 남녀공학 고교 교장은 "전교 10등까지 중에 남학생은 1~2명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 세계가 '女高男低' 대책 고심

여학생 성적이 남학생을 뛰어넘는 것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미국 미주리대와 영국 글래스고대 연구팀이 2000년부터 2010년 사이 PISA 결과를 분석한 결과, 참여 국가의 70%에서 여학생 성적이 남학생을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 강국 핀란드에서도 남녀 학생 간 학력 격차가 최대 교육 현안 중 하나다.

여학생들의 학업 성취도가 높은 데 대해 다양한 분석이 나온다. 미국 조지아대가 초등학생 5800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집중력·끈기, 열의 등 학습 태도에서 여학생들이 남학생보다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여학생들이 교실 환경에 적응을 잘하고, 스스로 통제하는 능력도 남학생보다 더 높다"면서 "이런 차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나타나기 시작해 갈수록 남학생과 격차를 벌린다"고 분석했다.

학교 교육이 읽기·쓰기 위주이기 때문에 여학생들이 유리하다는 분석도 있다. 서울시교육청의 초등 담당 장학사는 "초등 1·2학년 담임 여교사들이 '우리 반 남자애들은 왜 하나같이 산만한지 모르겠다'고 한다"며 "그 시기 남자아이들이 천방지축인 것은 정상적인 행동인데 여자아이들과 비교하니 정상적이지 않은 것처럼 여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남녀 격차 자체보다, 최하위권 남학생들이 늘어나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올해 교육부가 실시한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기초 학력에 미달하는 학생 비율이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월등히 높았다. 지난해 수능에서 하위권인 7~9등급을 받은 남학생 비율이 국·영·수 모든 과목에서 여학생보다 높았다.

우리나라보다 앞서 이런 현상이 시작된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남학생들을 끌어올리기 위해 맞춤형 교육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0년 전부터 미국에선 "소년들이 위기에 처했다(Boys' crisis)" "남녀 학생의 육체·정신적 발달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교육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쏟아졌다.

2008년에는 학부모들이 "남학생 특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교육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보이즈 이니셔티브(The Boys Initiative)'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