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익 논설위원

일본 동북부 이와테(岩手)현의 바닷가 마을을 여행하다가 모래사장 솔숲에서 작지만 인상 깊은 문학비를 본 일이 있다. '이시카와 다쿠보쿠가 소학교 4학년 때 소풍 왔던 곳'. 돌 위엔 이렇게 새겨져 있었다. 이시카와 다쿠보쿠(石川啄木)는 스물여섯에 요절한 일본 메이지 시대 천재 시인이다. 그렇다 해도 그가 다닌 학교나 탄생지도 아니고, 어려서 소풍 한번 왔을 뿐인 곳에 이렇게 문학비가 서 있다니…. 시인과의 조그마한 인연을 자랑스러워하는 주민들 마음이 전해져 왔다.

홋카이도 동쪽 구시로에는 다쿠보쿠 시비(詩碑)가 27개나 있다고 한다. 그중 하나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다. "이시카와 다쿠보쿠는 1908년 1월 21일 눈 내리는 구시로에 홀로 왔다." 다쿠보쿠는 그 무렵 가난과 싸우다 일자리를 찾아 구시로에 갔다. 그가 구시로에 머문 기간은 76일밖에 안 됐다. 그래도 구시로 시민들은 다쿠보쿠회(會)라는 모임까지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문학을 사랑하고 작가와 시인을 기린다는 것은 이런 것 아닐까. 다쿠보쿠의 고향 모리오카(盛岡)에는 당연히 다쿠보쿠 문학관이 있다. 다쿠보쿠를 자랑스러워하고 그리워하는 수많은 마음이 모여 이룬 결정체(結晶體)다.

일본에는 이런 문학관이 660개 있다. 그 정점에 있는 게 도쿄의 근대문학관이다. 이 문학관은 국가나 지자체 돈 쓰지 않는 걸 자부심으로 여긴다. 1963년 민간이 모은 기금으로 설립돼 지금도 사립 재단법인으로 운영된다. 시민들이 매년 한 계좌 1만엔씩 내는 후원회를 만들었다. 문인들의 육필 원고와 편지·일기·유품 등 110만여 점의 소장 자료도 대부분 유족이나 출판사 같은 민간이 기증한 것들이다.

서울 용산에 국립문학관을 짓는 문제로 며칠 전 문인단체와 서울시가 한바탕 충돌했다. 문인단체는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옆 문화체육부 땅을 가장 적합한 부지로 골라 발표했다. 서울시는 온전한 자연생태 공원이 힘들어진다며 바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정해진 방향이 오로지 공원이니까 딴것은 들어오면 안 된다는 서울시의 꽉 막힌 자세가 답답하긴 하다.

그렇다 해도 국립문학관을 추진하는 문인단체의 행보에는 우려할 만한 것들이 있다. 서울시가 제동 걸자 문인단체들은 성명을 냈다. '국립한국문학관 건립 방해 책동을 당장 멈춰라'. 우선 제목이 문학인들의 언어 같지가 않다. 성명은 "국립문학관 건립은 우리 문학의 대계를 세우는 역사적 과업"이라며 "국립문학관을 반대하고 관련 예산을 삭감하는 일은 국민의 염원을 훼손하는 폭력이자 문학과 문학인들을 능멸하는 권력의 횡포"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모든 문학인의 이름으로 대항할 것임을 천명"했다.

기세등등하다. 우리가 결정했고, 우리의 판단은 옳으니 따르라는 식이다.

국립문학관에는 세금 608억원이 들어간다. 문인단체들은 국민을 내세우지만 성명서에는 문학을 향유해야 할 국민의 마음을 사려는 노력과 겸허함이 없다. 더 큰 문제는 국립문학관이 왜 필요하고, 어떻게 만들겠다는 것인지 비전 제시가 없다는 것이다. 어느 문학인은 해외 문학관 탐방을 "문호(文豪)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작업"이라고 했다. 작가의 색 바랜 육필 원고나 그가 쓰던 만년필·안경 하나가 누군가에겐 작품 이상의 감동을 줄 수 있다. 그렇다면 국립한국문학관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준비가 무엇보다 선행돼야 한다. 안 그래도 지방의 수많은 문학관 중에는 건물만 번지르르하지 전시가 몇 년째 그대로이거나 자료가 부실한 곳이 많다. 우리는 '단편소설의 완성자'라는 현진건의 집 하나 지켜내지 못하고, 올해 한국 최초의 근대소설이라는 '무정' 발표 100주년을 흐지부지 흘려보낼 정도로 척박한 문화 환경 속에 있다.

국가가 법을 만들고 예산을 지원한다고 문학이 꽃필 수 있다면 문학 진흥은 얼마나 쉬운 일인가. 국립문학관 건립은 문인단체나 정부만의 사업일 수 없다. 그것은 시민 사이에 문학에 대한 사랑을 불러일으키고 시민과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어야 성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