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계장의 닭들은 멍할 거야. 너무 바보 같이 살아서 자기가 알인지 닭인지도 모를 거야." 장정일 소설 '보트 하우스'의 첫 문장인데 우리나라 고등학교 교실을 설명하는 데 이만한 표현이 없다. 수포자(수학 포기자)와 영포자(영어 포기자)가 는다고 호들갑이지만 그래도 이 아이들은 어쨌거나 하나는 붙잡고 있다. 문제는 교실의 절반을 차지하는 학포자(학업 포기자)들이다. 이 아이들은 포기할 기회조차 포기한 채 닭과 알 사이의 경계를 오간다. 학포자가 되면 내내 자는 거 말고는 학교에서 할 일이 없다. 혹시 학포자들이 가장 밤잠 안 자는 날이 언제인지 아시는지. 수능 모의고사 전날이다. 다른 시험과 달리 시험 시간 중에 교실 밖으로 내보내 주지 않기 때문에 하루 종일 책상에 엎드려 자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졸음을 최대한 축적하기 위해 전날 밤을 꼴딱 새운다.

엎드려 잔다고 하면 대부분 '잔다'에 방점을 찍으신다. 그러나 학창 시절 책이 아니라 '책상'을 벗 삼아 지낸 분들은 다 안다. 진짜 힘든 건 '엎드려'다. 2교시에 엎어진 아이들은 간절히 소망한다. "주여, 눈 떴을 때 제발 5교시이게 하소서." 그러나 눈 뜨면 여전히 같은 선생이다. 시간이 끔찍하게 안 간다. 의지로 돌파하여 하루를 꼬박 엎드려 자는 데 성공했다 치자. 이번에는 더 심각한 문제가 기다리고 있다. 일단 팔을 베야 하는데 장시간 그 자세를 취할 경우 혈액순환 장애로 만성 두통은 기본이다. 엎드려 자려면 목을 돌려야 한다. 목이 비틀어지고 인대 손상과 목 통증이 따라온다. 인대 손상은 목 디스크로 이어지기 십상이고 턱관절 장애는 부록이다.

한편 척추가 뒤틀리면서 심장과 폐가 압박을 받아 호흡곤란 증세가 몰려오며 위와 장에서는 소화기 장애가 발생한다. 결국 척추에서 목, 허리까지 다 망가지는데 이때 화룡점정이 엎드린 자세에서 다리를 꼬는 거다(어려울 것 같지만 해 보면 쉽다. 의외로 이 자세로 많이 잔다). 척추의 곡선이 틀어져 신체 균형이 퍼펙트하게 무너진다. 한번 머릿속에서 엎드려 다리를 꼰 자세에서 책상과 의자를 빼 보시라. 인간의 신체가 이렇게도 운용이 가능하구나 탄복하게 된다. 일부 준비성 있는 아이들은 얼굴 아래 담요나 쿠션을 받치고, 순발력 좋은 애들은 두루마리 화장지를 베기도 한다. 그러나 이 경우 볼 살이 베개에 밀리면서 눈과 코 밑에 주름이 생기고 장기간 반복하면 주름이 고착되기 때문에 특히 여학생이라면 피해야 한다.

이번 정부에서는 '한 아이도 놓치지 않는 기초 학력 보장'을 내세웠다. 무슨 말인 줄은 알겠는데 고등학교 3년을 내가 책상인지 사람인지 몰아(沒我)의 상태로 지낸 소생의 입장에서는 참 와닿지 않는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공부할 의지도 능력도 없는 아이들에게 기초 학력을 보장하겠다는 얘기는 고문을 하겠다는 소리로밖에 안 들린다. 공부가 싫고 안 되는 아이들의 문제를 공부로 해결하겠다는 전체주의적 발상은 제발 그만. 차라리 하루 종일 취미 생활이나 하게 내버려 두라. 적어도 몸은 건강해진다. 오늘도 학포자들은 엎드려 소리 없이 운다. 부모님께 죄송해서 불효로 울고, 몸이 아파 운다. 아이들이 엎드려 자는 건 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