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18 당시 신군부는 전남 치안을 총괄하는 안병하 전남경찰국장(경무관)에게 발포 명령을 내렸다. 광주 거리로 뛰쳐나온 시위대를 향해 총구를 겨누라는 것이었다. 6·25 때 전공을 세워 무공훈장을 받았던 군 출신인 안 경무관은 "시민을 지키는 경찰이 그럴 수 없다"며 명령을 거부했다.

5월 26일 치안본부에 들어간 안 경무관은 '직무 유기 및 지휘 포기 혐의'로 보안사로 끌려가 여드레 동안 갖은 고문을 당했다. 6월 2일 의원(依願)면직당하고 귀가해 아내와 세 아들 앞에서 쓰러졌다. 신부전증, 쓸개염 등으로 8년 동안 투병하다 1988년 혈액 투석 도중 숨졌다.

경찰청은 시민을 보호하고 경찰 정신을 지킨 공로를 인정해 고인을 '올해의 경찰 영웅'으로 선정했다. 22일 전남지방경찰청 1층 로비에선 추모 흉상 제막식을 열었다. 아들 안호재(58)씨는 "장롱 깊숙이 정복을 보관하며 손꼽아 복귀 명령을 기다리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명예가 이제라도 회복돼 다행"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