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거 맞으며 밤샘 회의하고, 전국 다니며 시장조사 했던 게 이제야 빛을 보나 봐요. '올림픽에 누가 관심 있느냐' 문전박대 당하기 일쑤였는데…."

20일 서울 중구 한진빌딩 5층 사무실. 통로에는 박스가 사람 키만큼 쌓여 있고, 주문을 알리는 전화가 쉴 새 없이 울렸다. 언뜻 창고나 다름없어 보이는 이곳은 평창 동계올림픽 '대박 상품'을 일궈낸 장소.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선물한 뒤로 지금껏 8만여개가 팔려나간 '수호랑' '반다비' 인형, 완판 행진으로 뉴스를 뜨겁게 달군 '평창 롱패딩' 등 평창올림픽 기념품 샘플이 벽면을 가득 채웠다. 연일 스타 상품을 만들어내는 주인공은 김재열(40) 롯데백화점 평창 라이선싱 팀장과 수석 상품기획자(치프 바이어) 최은경(38)·오세은(35)·이정주(41)·박영준(41)씨. 의류·잡화 등 각 분야 '에이스'들이 모인 '드림팀'은 평창올림픽을 후원하는 롯데백화점이 '마스터 라이선스'(상품 제작과 유통·판매 등에 대한 권리) 사업권을 따내면서 지난해 말 결성됐다.

평창 동계올림픽 기념상품을 기획하는 롯데백화점 평창 라이선싱팀 이정주(뒷줄 맨 왼쪽부터)·김재열·박영준씨와 최은경(앞줄 왼쪽부터)·오세은씨.

백화점 러시아 법인에서 5년 넘게 근무하며 소치 동계올림픽 열기를 현장에서 체감했다는 김재열 팀장은 "기획부터 디자인, 상품 출시 등을 짧은 시간에 해내야 해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 같았다"며 "설문 조사부터 시작해 유통·디자인 전문가들 자문을 하고, 공장을 섭외하느라 등에 땀 나도록 뛰어다녔다"고 했다.

이들을 가장 힘들게 한 건 올림픽에 대한 무관심이었다. '평창 롱패딩'도 올 초 열 군데 넘는 회사를 찾아다니며 삼고초려한 뒤 겨우 제작했다. "올림픽 상품 만들어 봐야 아무도 안 살 거라며 손사래쳤지요." 난관은 또 있었다. 한국 대표 상품으로 꼽힌 마스크 팩과 홍삼, 휴대폰 케이스 등을 제작해 품평회까지 마쳤지만 IOC(국제올림픽위원회)에서 판매 불가 방침을 내렸다. 올림픽 후원사의 유사 상품군에 속한다는 것이었다.

디자인 차별화로 난관을 뚫기로 했다. 평창 롱패딩의 경우 라이선싱팀이 쓸 수 있는 여러 슬로건 중 '패션, 커넥티드'로 결정했다. '평창'이란 슬로건은 올림픽이 끝난 뒤 입기 꺼려질까 봐, '팀 코리아'란 슬로건은 외국인들이 덜 선호할 것 같아서 제외했다. 트렌드도 미리 읽어 디자인에 반영했다. 최근 한류 팬들 사이 인기라는 '핑거 하트' 장갑이 대표적이다.

한류 스타들이 손가락 하트를 하는 장면이 방송에 등장하면서 '핑거 하트' '코리안 하트'라는 애칭이 생겼다는 데 주목했다. 엄지와 검지 부분만 빨갛게 돼 있어 겹치면 하트 모양이 된다. "불과 몇 주 전만 해도 '평창 롱패딩 하루 300장 팔기'가 목표여서 사돈에 팔촌, 동창까지 동원해 팔고 문상까지 가서 영업했는데 그땐 시큰둥했던 이들이 지금은 더 구할 수 없느냐며 전화에 불나도록 물어옵니다."

2020년 도쿄 하계올림픽 조직위원회,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IOC 라이선싱 팀원 등 총 9명이 23일 '평창 드림팀'의 기획 노하우를 들으러 온다. "평창올림픽이 도전 세 번 만에 어렵게 개최권을 따낸 거잖아요. 국민적 관심이 더 뜨거워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