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앞세운 '노치의 그림자']

20일 KB금융 주주총회에서 KB노조가 추천한 사외이사 후보에 대해 KB금융 주식의 9.8%를 보유한 국민연금이 찬성했다.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인 ISS가 이 후보에 대해 주주 이익을 해친다며 '반대' 의견을 냈지만 국민연금은 찬성표를 던졌다. 안건은 외국인 주주들 반대로 부결됐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이런 의결권 정책을 계속할 경우 앞으로 다른 기업들에서는 '노동 이사'가 탄생할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확산되고 있다. 국민연금이 600조원의 국민 노후 자산을 이용해 노조 편을 들면 민간 기업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국민연금은 KB금융 노조 추천 후보가 결격 사유가 없어 찬성했다고 밝혔다. 앞으로 계속하겠다는 뜻이다. 국민연금은 그동안 이사 선임에서 지배주주의 의사에 반해 의결권을 행사한 전례가 거의 없다. 국민연금은 삼성전자·현대차·SK하이닉스 등 지분을 5% 이상 가진 상장 기업만 275개에 달한다. 국민연금이 KB금융처럼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에 나설 경우 주요 기업들의 경영권 구조에 큰 변화가 생길 수 있다.

기업계에선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공공기관 노동 이사제'를 민간 기업으로 확대하고 이를 위해 국민연금의 지분을 활용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국민연금의 '공익성' 논리를 내세우고 있으나 온 국민의 노후를 책임진 국민연금의 재정 악화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공익성을 앞세워 친노동 의결권 행사에 나설 경우 기업 경영을 해칠 수 있고 주가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 이사'를 만들기 위해 국민의 노후 자산 손실을 자초하는 사태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여권이 그토록 비판했던 삼성 계열사 합병 때의 의결권 행사와 무엇이 다르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여권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때 국민연금이 찬성한 것이 국민연금의 목적을 벗어난 불법행위라고 비판해왔다. 대선 공약을 이행하려 국민연금이 노동 이사에 대해 찬성표를 던졌다면 이것 역시 정치적 행위이자 국민연금의 목적을 벗어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