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휘 도쿄 특파원

'눈·지진 등 재해로 정해진 날짜에 대학입학센터시험(한국의 수능시험)을 실시할 수 없는 경우 재시험을 실시한다.'

일본 정부가 지난 6월 발표한 2018학년도 센터시험 일정에 들어 있는 규정이다. 자연재해가 일어나거나 시험을 치르는 중에 문제가 생기면 미리 정해둔 날짜에 시험을 다시 본다는 내용이다. 실제로 지난 2011년 폭설로 시험을 못 본 수험생 425명에게 재시험 기회를 줬다.

재시험 날짜는 본시험 일주일 뒤로 못 박아 뒀다. 2018학년도 본시험이 2018년 1월 13~14일이니까 재시험은 1월 20~21일이다. 이날도 시험 진행이 어렵다면 정부가 되도록 빨리 다른 날짜를 정해 알려야 한다는 단서도 붙어 있다. 문부과학성 관계자는 "지진·폭설에 따른 수험생과 학부모의 불안과 우려를 염두에 두고 오래전 만든 규정"이라고 했다. 수험생과 학부모, 교사 등 입시 관계자 모두 이 내용을 잘 알고 있다. 사이타마현 쇼헤이 고등학교의 한 교사는 "지진으로 센터시험을 못 볼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그렇게 되더라도 일주일 뒤 다시 시험을 잘 치르도록 지도하면 된다"고 했다.

2018학년도 대입 수능이 연기된 16일 서울 중구 중림동 종로학원 옥상에서 수험생들이 전날 버렸던 문제집을 찾고 있다.

본고사도 재시험에 따른 혼란 방지책을 두고 있다. 동일본 대지진이 터진 2011년 3월 11일은 센터시험이 끝나고 대학별 본고사가 한창 진행되던 시기였다. 동일본 지역 수험생 상당수가 본고사를 치르러 갈 수 없게 되자 대학 수십 곳이 바로 '시험 연기' 조처를 했다. 일부 대학은 그해에 한해 본고사 없이 자기소개서와 센터시험 성적만으로 학생을 뽑기로 했다. 지진 피해로 고사장에 갈 수 없는 수험생들이 '전화 통지'를 하면 재시험을 보게 하는 대학도 있었다. 모두 하루 만에 나온 조치였다. 홋카이도의 한 대학 관계자는 "일본에서 지진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으니까 이 경우 어떻게 할지 대비해 둔다"며 "그래야 수험생의 불안감도 줄어들 것 아닌가"라고 했다.

수능시험 하루 전인 15일 오후 발생한 지진으로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불안감에 떨었다. 학교 벽에 금이 간 것을 본 포항 지역이나 지진을 느낀 전국의 수험생·학부모들이 '이런 상황에서 수능시험을 보느냐'며 걱정했고, 다른 한편으론 '시험 하루 전날인데 수능시험일이 바뀌는 거냐'며 불확실성에 혼란스러워했다.

일본처럼 '일주일 뒤 실시' 같은 지침이 있었다면 수험생과 학부모의 혼란이 덜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문제 은행 방식인 일본 센터시험과 매년 문제를 새로 만들어야 하는 수능시험의 재시험 실시는 조건과 상황이 다르다. 일본처럼 지진이 잦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지진 등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 우리도 수능시험을 어떻게 치를지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방침이 정해지면 미리 공지하면 된다. 지진이 일어나지 않으면 좋은 일이고 '만에 하나' 발생하면 '플랜B'에 따라 다시 준비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