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무래도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내장인 것 같다. 동물의 내장도 좋지만 역시나 생선의 내장! '어류나 갑각류의 내장도 좋지만 최고는 두족류의 내장이다!'라고 생각하며 살캉말캉하게 데친 주꾸미 머리를 씹었다. 머리이면서 동시에 몸통인 그것을. 가위질할 때 흘러나온 골수(?)와 먹물이 접시로 떨어지는 걸 보며 일행은 괴로움에 탄식. 잘린 머리를 거기에 비벼 먹었다(음식은 이런 사람과 먹어야 한다). 나는 이걸 참기름에만 살짝 찍어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바다 것이므로 소금 칠 필요가 없으며, 초고추장은 이 절묘한 응집을 방해한다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다 궁금해졌다. 왜 오징어 먹물은 안 먹는 걸까? 주꾸미나 낙지의 그것보다 별로여서일 것인데, (유럽에서) 오징어 먹물을 리조토나 파스타 소스로 쓰는 걸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한국 근해에서 잡히는 오징어와 지중해 부근에서 잡히는 오징어의 종이 다를 수도 있겠고.

그 와중, 재미있는 글을 읽었다. 우리는 오징어 먹물로 글씨를 썼다는 것이다. 오징어 먹물로 글씨를 쓰면 시간이 지나면 글자가 사라진다. 그래서 사기꾼들이 계약할 때 오징어 먹물로 쓰곤 했다고. 글씨를 다시 되살리려면? 바닷물에 담그면 된다. 셜록 홈스도 아니고 이런 걸 알 리 없었으니 당할 수밖에 없었겠다. 또 재미를 위해서도 그랬다. 다산 정약용도 오징어 먹물로 글씨를 썼다. 정민의 '책벌레와 메모광'에 나오는 이야기다.

다산이 오래되면 글씨가 없어지는 걸 알면서 그랬던 것은 글자와 노는 기쁨 때문이었을 거다. 정민은 이렇게 적었다. "쓸 때는 흡착성이 강해 글씨가 아주 잘 써지고, 쓰고 나면 마치 펄이 든 것처럼 반짝반짝 빛난다. 하지만 종이에 스미지 않고 겉돌다가 시간이 꽤 흐르면 박락(剝落)되어 떨어져 사라진다." 박락, 벗겨 떨어진다는 뜻이다. 글씨는 사라지나 글씨를 적었던 나는 사라지지 않는다. 무대에서 사라진 음악 같기도 하고, 입가를 거쳐 사라진 음식 같기도 하다. 온데간데없으나 기억에서는 충만한 그것들 말이다.

요리용 오징어 먹물을 구해 글씨를 쓰고 싶어졌다. 얼마나 시간이 흐르면 사라질까도, 또 바닷물에 넣으면 어떻게 나타날지도 몹시 궁금해졌기 때문에. 요리는, 역시 별로다. 먹물은 주꾸미다! 심심하게 양념한 팔팔거리는 주꾸미를 철판에 볶아 좀 먹다 그 반은 김치를 넣어 밥을 볶고, 또 반은 먹물에 우동 면을 비벼주는 그 삼삼한 집에 꽂힌 이후 이렇게 주장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