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 서강대 교수·과학커뮤니케이션

다시 수능의 계절이다. 올해 응시자는 59만4000명이다. 2000년의 89만6000명에서 43.7%나 줄어든 규모다. 앞으로는 더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정작 수능시험 성적이 반영되는 정시 모집 비율은 고작 26.3%뿐이다. 대부분의 수험생이 괜한 헛고생을 하고 있는 셈이다. 대학이 외면해버린 수능이 존폐의 갈림길에 놓여 있다는 뜻이다. EBS 수능 교재에 의존하는 학교 교육도 무색해질 것이다.

종합적·논리적 사고력을 평가하겠다는 수능의 당초 목표는 오래전에 퇴색해 버렸다. 미국의 대학입학자격시험(SAT· Scholastic Aptitude Test)을 어설프게 흉내 낸 수능은 도입 3년 만에 고질적인 학력고사로 되돌아가 버렸다. 교과 이기주의가 압도하는 교육 현실에서 통합 교과적 출제는 그림의 떡이었기 때문이다. 교과목과 출제·평가 방식의 잦은 변경으로 누더기가 돼버린 것도 사실이다. 짝퉁·누더기 수능에서는 더 이상의 희망을 찾을 수 없다. 문·이과 통합도 불가능하고 절대평가에 대한 기대도 무망하다.

더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제한된 교과 범위 안에서는 객관식 수능 출제를 무한정 반복할 수 없다. 결국 출제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교과 지식의 이해보다 수능 문제를 푸는 얄팍한 요령이 더 강조된다. 난이도 조절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선택 과목들 사이의 형평도 깨졌고, 출제 오류도 해결하지 못했다. 출제 관리의 관료화도 심각하다.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둔 수험생들이 15일 오후 대전 서구 둔원고에서 수능 당일 유의사항에 대해 안내를 받고 있다.

학생부가 수능의 대안이 될 수도 없다. 교육부의 경직된 지침에 따라 작성·관리되는 학생부로는 더욱 그렇다. 교사가 학생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해서 정리·기록하는 전문 전기(傳記) 작가가 될 수도 없고, 입학사정관에게 사람의 생애를 낱낱이 꿰뚫어 보는 염라대왕의 초월적 능력을 기대할 수도 없다. 대학들이 무분별하게 쏟아내는 요란한 '인재상'도 혼란스럽다.

내신과 학종은 미래의 진로를 구체적으로 정해놓고 철저하게 '경력 관리'를 하도록 강요한다. 대학 입학을 원하는 청소년이 아니라 야망을 가진 정치인이나 관료들에게 더 어울리는 일이다. 자율은 허울뿐이고 꿈과 경력 관리만 강요당하는 학생들의 입장이 난처하다. 교과·봉사·독서·동아리·자치활동 중 어느 것도 소홀히 할 수 없다.

특강도 놓칠 수 없고 경시대회, 개인 연구(R&E)도 외면할 수 없다. 자율 동아리와 아시아 최대의 청소년학술대회에도 참여해야 한다. 단순한 참여를 넘어서 탁월한 성과도 거둬야 한다. 36시간의 독학으로 인간의 바둑 실력을 훌쩍 넘어섰다는 '알파고 제로'에도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학생부에 대한 무분별한 평가는 반(反)교육적이다. 미래에 대한 꿈은 부모도 함부로 간섭할 수 없을 정도로 내밀한 것이다. 남에게 공개해야 할 이유가 없고, 평가를 받아야 할 이유는 더욱 없다. 사춘기 한때의 방황을 평생의 전과(前科) 기록처럼 남겨서 평가하는 것도 반(反)인격적이다. 학생부는 참고용이지 객관적인 평가 자료가 될 수 없다. '가정 사정으로 환경이 좋지 못하지만 자력으로 잘해 나가고 있음' 이상의 기록은 인권침해적이다. 직업의 절반이 사라지는 현실에서는 섣부른 진로 탐색도 무의미하다.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위기에 처한 이웃을 구출해내는 별난 기회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도 아니다.

진정한 인재상을 고민해야 한다. 맹목적인 도전만 일삼는 전사(戰士)의 시대는 끝났다. 선진 민주 시민의 품격과 교양을 갖춘 점잖은 기사(騎士)를 양성해야 한다. 영혼을 잃어버린 교육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학부모의 조급증과 불안을 부추기는 엉터리 정치인·전문가·관료들과 사교육 시장을 철저하게 규제해야 한다. 대학이 인재를 선발하는 다양한 역량을 키우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