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3m, 폭 6m의 대형 화폭에 다도해의 푸른 바다가 일렁인다. 파도가 멈추는 곳에 황금빛 땅과 섬들이 닿아 있고, 그 사이를 크고 작은 고깃배들이 오간다. 단순미를 강조한 반(半)추상 작품이지만 볼수록 화려한 이 작품은 전혁림(1915~2010)의 2005년작 '통영항'이다.

다도해의 푸른 바다를 그린 전혁림의‘통영항’(2005).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인연이 있는 그림이기도 하다. 2005년 우연히 TV를 통해 이 그림을 본 노 전 대통령은 작가의 전시가 열리던 경기도 용인 이영미술관으로 찾아가 "힘들 때마다 다도해를 내려다보며 위안을 받았다" 고백한 뒤 화가에게 청와대에 걸 그림을 부탁한다. 당시 구순이었던 전혁림은 4개월 동안 한산섬과 미륵섬을 품고 있는 또 하나의 '통영항'(2006)을 완성했다. 대통령도 반한 다도해 풍광을 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K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혁림의 'The Blue Sea In The Blue House:님을 위한 바다'전(展). '통영항'을 비롯해 살아 펄떡이는 코발트 블루와 오방색을 절묘하게 조화시켜 '바다의 화가' '색채의 마술사'로 불린 전혁림 작품 100여점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경남 통영에서 태어난 전혁림은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았다. 통영수산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독학으로 그림을 그렸다. "자연이 가장 훌륭한 선생"이라고 믿은 그는 스물셋에 부산미술전, 서른넷에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입선했지만 학연·지연에서 밀려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예순이 넘어서야 구상과 추상을 넘나드는 한국적 색면추상의 선구자로 조명을 받기 시작한 전혁림은 여든일곱에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을 받으면서 그 진가를 인정받는다. "그림은 국적이 뚜렷해야 한다"고 믿은 전혁림은 한국의 민화, 자수, 벽화 등에서 영감을 얻어 토속적인 미감(美感)을 구현했다.

서구의 추상 사조나 단색화 바람에도 묵묵히 자신만의 화법을 고집하며 고향의 바다를 그려나간 전혁림에 대해 미술평론가 오광수는 "나고 자란 곳에서 한우물을 판 뚝심 있는 화가로, 색채의 풍부함 면에선 국내 최고"라고 평했다.

통영항 풍광 외에도 1000호 대작 '한려수도의 추상적 풍경' '기둥 사이로 보이는 한려수도' '코리아 판타지' 등이 선보인다. 엽서만 한 캔버스에 매일 한 장씩 그려나간 '누드' 연작도 재미있다. 빨강·파랑·노랑 원색의 바탕에 단숨에 그린 듯한 화풍이 마티스를 연상시킨다. 내년 2월 11일까지. (02)2138-09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