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성진 산업1부 차장

"한국형 혁신 모델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시내 면세점 사업을 법안 하나로 뿌리째 뒤흔든 정치인입니다."

면세점 업계 임원 A씨는 최근 기자와 통화하며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불가론(不可論)'을 쏟아냈다. 홍 후보자는 민주통합당 의원이던 2012년, 면세점 사업권을 5년마다 원점에서 다시 심사하도록 규정한 이른바 '5년 한시법'을 주도했다. 이 법이 처음 적용된 2015년 겨울,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과 SK 워커힐면세점이 사업권을 잃었다. 연 매출 6000억원을 올리던 월드타워점은 6개월 넘게 문을 닫았고, 워커힐면세점은 결국 사업을 접었다. 직원 2200여 명이 일터를 떠나야 했다.

면세점 업계에서는 '5년 한시법'을 '홍종학 법'이라 부르며 기업가 정신을 파괴한 대표적인 악법으로 꼽는다. 치열한 기업 간 경쟁과 '창조적 파괴'를 통해 경제 성장이 이뤄진다는 슘페터의 혁신(innovation)론에 정면 배치된다는 것이다.

2일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 준비를 위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 마련된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내로남불' 홍종학 후보자는 어떤 인물?]

시내 대형 면세점은 한국 면세점 업계가 창조한 '작품'이다. 한국 기업들이 공항에서 운영하던 면세점을 막대한 투자를 통해 시내에도 열어 편리한 쇼핑 서비스를 제공했다. 해외여행 붐을 타고 중국 관광객이 몰려들자 외환을 긁어모으는 창구가 됐다. 중국과 일본의 벤치마킹이 잇따르면서 "첨단 IT 분야 못지않은 혁신 유통 모델"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홍 후보자는 다른 기준을 갖고 있었다. "재벌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독식한다"며 '5년 한시법'을 밀어붙였다. "기업이 장기 투자를 꺼리고, 고용 안정도 보장하기 어려울 것", "중소기업이 감당하기엔 면세점 사업의 리스크가 너무 크다" 등 지적이 잇따랐지만 허사였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사드 보복으로 방한 중국 관광객이 반 토막 나자 면세점 상당수가 개점휴업을 면치 못했다. 새로 사업권을 딴 면세점들은 개장 연기만 바라고 있다. "나눠먹기식 운영으로 국내 면세점 경쟁력이 하향 평준화됐다"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홍 후보자가 추진한 정책을 지켜본 이들은 "쏟아지는 의혹에 대한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식 태도보다, 혁신에 대한 그의 시각이 더 큰 문제"라고 말한다. 경쟁과 혁신을 통한 성공이라는 경제의 기본적인 작동 원리를 무시하는 것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는 결격이라는 지적이다. 대기업 고위 임원 B씨는 홍 후보자가 2000년 발표한 '진화가설 대 암세포 가설' 논문을 보고 그의 머릿속에 '재벌=암세포'라는 등식이 깊이 새겨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혁신 가치를 최일선에서 이끌고 전파해야 할 부처다. 치우친 이념으로 혁신 성장을 가로막는 대표적 악법을 만든 홍 후보자가 혁신 성장을 이끌 부처를 이끈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벤처 중기인들은 "우리에겐 진정한 혁신 리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홍 후보자는 이런 바람을 이뤄줄 비전과 역량을 갖췄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