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원 글지기 대표

가을의 전설이 한 편 늘었다. 호랑이가 열한 번 다툰 야구 대장 자리를 싹 차지했단다. 용, 독수리, 사자 들은 일찌거니 혼쭐났고. 마침내 곰과 만났대서 ‘단군(檀君) 매치’라나. 한바탕 싸움 앞두고 곰 한 마리가 앞발을 치켜들었는데….

"그거(단군신화) 자체가 곰이 호랑이를 이긴 얘기지 않습니까? 마늘과 쑥을 먹었던 그 인내와 끈기로 호랑이를 잡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다 어그러지고 말았다. 곰이 첫판 이기고 네 판 내리 졌으니까? 또 있다. '곰이 호랑이를 이긴 얘기지 않습니까'가 어법에 안 맞는 것이다.

'-이다'를 부정(否定)할 때는 '-이(가) 아니다'로 써야 한다. '11월은 겨울이다' 했다 치자. 그게 아니라고 하려면? '11월은 겨울이 아니다'가 맞지 '11월은 겨울이지 않다'가 아니잖은가. 그러니 "곰이 호랑이를 이긴 얘기 아닙니까?" 해야 옳다.

'-지 않(는)다'는 '꽃은 모두 아름답다'처럼 서술어가 용언(用言·동사, 형용사)인 부정문(꽃은 모두 아름답지 않다)에 쓰지, 서술격 조사와는 어울릴 수 없다.

이런 해괴망측(駭怪罔測)한 표현을 언론 매체가 버젓이 쓴다.

'바른정당 (국회의원) 지금 딱 스무 명이지 않습니까.'(→스무 명 아닙니까) 라디오에서 기자가 말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구 절벽은 불행 중 다행이지 않을까?'(→다행 아닐까) 교수가 칼럼에 이렇게 썼다.

'강 재판관은 "너무 모순이지 않느냐. 설명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모순 아니냐) 재판 기사 한 대목이다.

심지어 시인이 말했다. "시라는 게 원래 말장난이지 않은가."(→말장난 아닌가)

미처 걸러내지 못한 취재·교열 기자 탓인 줄만 알았더니…. 표준국어대사전 예문에서 못 볼 걸 봤다. '바로 그 사람이었지 않느냐?'(→그 사람 아니었느냐)

선발투수가 실컷 얻어맞고, 믿었던 구원투수마저 밀어내기 볼넷에 폭투(暴投)까지…. 우리말이 지금 그 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