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스스로 찾고 생각하고 쓰고 말하니까 기억에도 더 오래 남아요."

10월 31일 일본 사이타마현 쇼헤이(昌平)중학교 사회 수업 시간. 이날 수업 주제는 '북아메리카'였다. 교사는 칠판 앞에서 설명하고, 학생들은 열심히 필기하는 장면은 없었다. 아이들은 모두 컴퓨터 앞에 앉아 구글과 야후 검색창을 띄워놓고 '북아메리카 기후' '북아메리카 인구' 등 키워드로 다양한 자료를 찾고 있었다. 자기가 찾은 내용으로 옆자리 친구랑 토론도 했다. 1학년 기무라군은 "자료 찾고 토론하고 발표하는 게 수업의 대부분"이라며 "선배들은 선생님 말씀을 듣기만 했다던데, 우린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이날 스스로 조사한 내용으로 1000자 글을 써 교사에게 냈다. 쇼헤이중은 1주일 총 35시간 수업 중 23시간을 이렇게 토론·글쓰기 수업을 진행한다. 일본 정부 지원을 받아 2015년부터 토론·논술형 교육과정인 '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IB) 프로그램'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 초·중·고교 59곳이 IB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IB 운영 학교를 2018년까지 200곳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읽고 생각하고 쓰고 토론하고… 달라진 일본 교실 - 일본 사이타마현 쇼헤이중학교의 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IB) 수업 현장. 교사가 배울 주제를 알려주면 학생들이 스스로 자료를 찾고 토론을 하면서 수업을 이어간다.

주입·암기식 교육으로 잘 알려진 일본이 대대적인 교육 개혁을 진행하고 있다. 단순히 수능 시험 과목 일부를 바꾸는 정도가 아니라 대학 입시는 물론 초·중·고 교육과정을 전반적으로 뜯어고치는 '그랜드 플랜'이다. 언론에선 '교육유신'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일본의 교육 개혁은 저출산으로 생산 가능 인구가 줄어들고 산업과 고용 구조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지금의 교육으로는 미래 인재를 기르기 어렵다는 절박함으로 시작한 것이다. 문부과학성은 2015년 대학 입시 개혁안을 발표했고, 작년 8월엔 새로운 초·중·고 교육과정 가이드라인을 공개했다.

◇2020년, 수능에 논술 도입

일본 내에서 가장 관심이 쏠리는 건 '대입 개혁'이다. 새로운 입시 제도는 도쿄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 말 대학 입학시험을 치르는 올해 중 3 학생들에게 적용된다.

현재 일본 대입은 보통 우리의 수능과 비슷한 대학센터시험과 대학별 고사(2차 시험)로 이뤄진다. 2020년부터는 '대학센터시험'을 폐지하고, '대학입학공통시험'을 도입한다. 센터시험은 지식 자체를 묻는 객관식 시험이었지만, 새 '대학입학공통시험'은 지식 활용 능력을 본다. 먼저 국어(일본어)와 수학 과목이 논술형으로 출제된다. 지난 5월 문부과학성이 발표한 국어 과목 예시 문제를 보면 '자연경관 보호 가이드라인'이 소재로 등장한다. 아버지와 딸의 대화 내용과 논의의 대립점을 설명한 제시문을 읽고 자기 생각을 80~120자로 쓰는 문제다. 수학은 공원의 동상을 보여주면서 '코사인 법칙'을 응용해 동상이 보이기 쉬운 위치나 각도를 찾아내 쓰는 것이다. 2020년 국어·수학으로 시작해 과학·역사·지리·윤리에도 서술 문항을 도입할지는 추후 결정하기로 했다.

대학입학공통시험 후 희망하는 대학에서 치르는 2차 시험(대학별 고사)도 달라진다. 지금까지는 '아카혼(빨간 책의 일본말)'이라고 불리는 수십 년치 기출 문제집을 달달 외운 뒤 그대로 답안지에 옮겨 쓰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런 2차 시험도 다방면 평가로 바뀐다. 대학별로 논술, 에세이, 프레젠테이션 등 다양한 시험 유형을 활용하게 된다. 문부과학성 측은 "현대사회의 복합적 문제를 풀 수 있는 사고력과 문제 해결력을 키워주자는 취지"라고 밝혔다.

또 2019년 일종의 고교 졸업 자격시험에 해당하는 '고교 기초학력진단평가'가 새로 도입된다. 고교에서 최소한 배워야 할 부분을 배웠는지 테스트하는 시험이다. NHK가 학생 수 1만명 이상 일본 대학에 물었더니 45곳 중 29곳(65%)이 이런 입시 개혁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수동적인 교육은 그만

대학 입시와 연계해 교육 현장도 변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20년 초등학교, 2021년 중학교, 2022년 고등학생 대상 새로운 교육과정을 시행할 방침이다. 핵심은 학생들이 수동적으로 지식을 전달받는 방식에서 토론하고 자기 생각을 글로 쓰는 방식으로 바꿔 사고력을 길러주자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IB 프로그램 도입이다. IB는 스위스 비영리 교육 재단 '국제 바칼로레아 기구(IBO)'가 주관하는 시험·교육과정으로, 1968년 외교관 자녀·상사 주재원 자녀 등을 위해 개발돼 현재 전 세계 146개국 3700여 학교에서 100만명 이상의 학생이 이수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교육 개혁의 일환으로 2015년 아시아 국가 최초로 공교육에 IB를 도입했다. IB는 원하는 초·중·고교가 문부과학성에 신청하면 정부가 교사들을 연수시켜 준다. IB 수업은 계속 읽고 생각하고 쓰고 발표하고 토론해야 한다. 기존 교육 방식대로 공책에 필기하고 암기하는 것은 영어 문법 수업 정도에 그친다. '정답 하나만' 골라내는 기존 교육으로는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맞닥뜨리는 문제나 갈등을 풀 수 없다는 인식에서 나온 개혁이다. 가미쿠보 마코토 리쓰메이칸대학 정책과학부 교수는 "인공지능(AI)이 대체할 수 없는 '고급 사고력'을 필요로 하는 업무가 가능한 인재를 기르기 위해서는 이런 교육 개혁이 필수적"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