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동인문학상 수상 작가 김애란(37)씨는 지난 8월부터 폴란드 바르샤바에 머물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바르샤바 대학이 진행하는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가 중이기 때문이다. 현지에서 집필하면서, 한국 문학 관련 강연도 하고 있다. 11월 중순 귀국할 작가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수상 소감부터 말해달라.

"며칠 전, 한 심사위원 선생님께서 '바깥은 여름'에 대해 쓰신 글을 다시 찾아봤다. 그러곤 마지막에 '장래가 천천히 눈부셔지길 바란다'고 쓰신 문장 앞에서 오래 멈춰 있었다. 장래(將來), 바꿔 쓰면 긴 미래(長―來). 일찍 데뷔해 이제는 나한테 그런 게 없을 거라 생각했다. 경력이 쌓였으니 앞으로는 장래보단 시험과 평가가 더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그리고 그건 그것대로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했다. 어른들이 들으면 나무랄 말이지만, 갑자기 누가 알려줘서 내가 젊다는 걸 알았다. 이 작가의 장래가 밝아지길 바란다고, 이미 어디 도착한 사람이 아니라 갈 사람처럼 말씀해주셔서 감사했다."

김애란씨는 “등단하기 전에 희곡 창작을 배웠던 경험이 소설 쓰기에 큰 도움이 된다”라고 말했다.

[2017 동인문학상에 김애란 '바깥은 여름']

―수상작 제목에서 '바깥'의 의미는 무엇인가.

"말 그대로 나의 외부. 나와 타인, 나와 세상의 간극을 나타내는 말로 썼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이 세상 또는 타인으로부터 느끼는 온도 차, 시차 때문에 가슴에 결로(結露)와 얼룩이 생기는 이야기들을 묶었다."

―수상 작품집은 저소득층·청년 백수·비정규직 지식인·다문화 가정 등의 고단한 삶을 다양하게 담고 있다. 수상작에 실린 단편들을 쓴 2012~2017년 사이 일어난 사회적 사건들이 어떤 영향을 미쳤나.

"소설 안에 사건을 의식적으로 가져오지 않더라도 동시대의 공기가 내 몸에 밴다. 작가의 몸이 만일 세상의 많은 아픔과 풍경, 이야기를 '매질'로 받아들이는 것이라면, 책을 묶고 난 뒤 내 몸이 바뀐 걸 알았다. 똑같은 햇빛이라 해도 매질의 성격에 따라 빛이 꺾이는 각도가 달라지지 않나. 우리에게 한 작가가 아니라 여러 작가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수상작에 실린 단편 '입동'은 네 살짜리 아이를 교통사고로 잃은 젊은 부모의 아픔을 다뤘다. 문단에선 세월호 비극의 비유로 이해하는 이들이 많다.

"그렇게 읽는 분이 많다. 한국 독자라면 아마 우리가 함께 겪은 일을 떠올리실 수밖에 없을 거다. 외국에선 어떨지 모르겠다. 처음 '입동'을 번역하신 폴란드인 선생님께서 '내가 이만큼 울어줬으니 너는 그만 울라는' 말의 뜻이 무엇인지 물으셨을 때, 이 문장의 (한국적) 특수함을 처음 자각했다. '문화 차이' 때문이 아니라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셨을 거다."

―동갑내기 세대가 오늘날 어떤 삶을 산다고 생각하나.

"이전 세대 가난은 미담 또는 자랑, 보편일 수 있었는데, 지금은 비밀이자 수치가 된 것 같다. 많은 청년이 자기 삶의 조건이 지금보다 크게 나아지지 않을 거란 불안과 예감을 갖고 있는 듯하다. 아마 내 아랫세대는 더 할 것이다."

―폴란드에서 머물며 얻은 것은 무엇인가.

"이곳 오케스트라 티켓 가격이 부담스럽지 않은 편이라 매주 한 번 이상 공연장을 찾는다. 스스로에게 '내일을 기대하게 만드는 약속'을 만들어주려는 의미도 크지만, 이곳의 음악가와 청중으로부터 진심으로 치유받은 부분이 있다. 언젠가 꼭 음악에 대한 소설을 써보고 싶다."

―만약 홀로 무인도에 가야 할 때 지니고 갈 책 세 권을 고른다면.

"멜빌의 '모비딕'이나 페렉의 '인생사용법',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처럼 일단 두꺼운 책이 떠오른다. 마음이 조급해져서 그럴 거다. 그렇지만 실제로 세 권만 골라야 한다면 무척 고민스러울 것 같다. 확실히 마음에 둔 또 한 권은 '성경'. 두께 대비 한 권에 무수히 많은 이야기가 들어있어서다. 나는 종교가 없지만 여러 가지 질문을 촉발시키는 책은 좋은 책이라 생각한다. 무인도에서 삶은 가혹하고 지난할 텐데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인물들이 말하고, 생각하는 '성경'을 읽으면 평소보다 훨씬 적극적인 독서를 하게 될 것 같다. 그러다 뭔가 쓰고 싶어지면 그 욕구로 또 며칠 버텨볼 것 같다."

☞김애란

김애란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를 다녔고, 2003년 계간‘창작과 비평’을통해 등단했다. 김씨의 소설은 2000년대이후 새 풍속도를 경쾌한 언어로 그려내왔다. 그는 한국일보문학상·이효석문학상·이상문학상·신동엽창작상·한무숙문학상 등을 잇따라 받았다. 프랑스에서 출간된 김씨의 단편 소설 선집 ‘우리는 편의점에 간다’는 2014년 현지 비평가와 언론인들이 선정하는 ‘주목받지 못한 작품상’을 받았다. 지난 6월 말 출간된 ‘바깥은 여름’은 이미 7만5000부를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