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막에서 음유 시인들의 노래 경연 대회를 시작하는 엘리자베트(서선영).

기대와 아쉬움이 엇갈린 무대였다. 성남문화재단이 지난 26~29일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세 차례 올린 바그너 오페라 '탄호이저'는 38년 만에 국내 제작진이 만드는 대작이라 개막 전부터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바그너 오페라를 제대로 소화하기엔 아직 역량이 부족했던 것 같다.

세 시간 동안 음악을 이끌어간 오케스트라가 가장 문제였다. 국내 오케스트라의 취약점으로 꼽히는 금관 파트를 비롯, 바그너를 연주한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빈약한 소리였다. 샌프란시스코 오페라극장에서 바그너 악극 반지 시리즈를 이끈 관록의 지휘자 미카엘 보더는 컨디션 나쁜 투수가 빠른 직구 대신 제구력만으로 승부하듯 조심스럽게 악단을 리드했다. 결정적 패착은 없었지만 맥 빠진 바그너였다.

박상연이 연출을 맡은 무대도 연습 부족이 두드러졌다. 탄호이저가 관능의 신 베누스에게 빠져 쾌락에 몸을 맡긴 서막에서 댄서들은 에로틱한 몸짓으로 춤을 췄지만 안무와 음악이 엇박자일 때가 많았다. 장중한 음악을 배경 삼아 아크로바틱처럼 펼친 격렬한 춤도 몰입을 방해했다. 탄호이저 하이라이트인 '순례자의 합창'에서 무대에 나와 노래해야 할 합창단원들은 독일어 가사를 외우지 못한 탓인지, 아예 등장하지 않았다. 백스테이지에서 부른 노래도 음정이 불안해 성스러운 분위기를 살리지 못했다.

26일과 29일 주인공 탄호이저 역을 소화한 테너 로버트 딘 스미스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와 '로엔그린', '발퀴레'의 주인공으로 잔뼈가 굵은 성악가. 공연을 불과 열흘 앞두고 연습에 합류해 최상 컨디션은 아니었지만, 이름난 바그너 테너답게 탄호이저를 무난하게 소화했다. 작년 11월 국립오페라단의 '로엔그린' 엘자를 맡았던 소프라노 서선영은 이번에도 '탄호이저' 여주인공 엘리자베트를 노래하면서 바그너 소프라노로서 가능성을 다시 한 번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