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세상이 바뀌고 있는 것을 몰라도 큰 피해가 없는 조직인가. 서울대 전임 교원 중 여교수 비율은 15%다. 반면에 고용이 불안정한 비(非)전임 교원은 58%가 여성이다. 전체 학생의 40.5%나 되는 여학생은 이런 교원 임용의 성비(性比) 불균형을 보며 자신의 앞날을 보지 않겠나.” 서울대 생명과학부 연구실에서 만난 노정혜(60) 교수는 ‘황우석 사태’와 연관된 인물이다.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논문 조작 의혹이 터졌을 때 서울대 조사위원회의 대변인을 맡아 한때 매스컴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그녀는 황우석 지지자들의 ‘공적(公敵)’이 됐지만, 과학계의 정직성을 지켜냈다는 평가를 얻었다. 11년 세월이 흘러, 그녀가 다시 뉴스에 나왔다. 이번에는 ‘서울대 다양성위원장’이라는 좀 낯선 직책으로 ‘서울대 다양성 보고서’를 발표한 것이다. “명색이 국내 최고라는 서울대의 여교수 비율 15%는 우리 사회 여성 지도자 비율의 모형이라고 볼 수 있다. 어떤 조직이 창의성과 경쟁력을 갖추려면 내부 구성원이 다양해야 한다.”

노정혜 교수는 “30년간 연구해 모래알 같은 지식 하나 얻었다. 그런 사소한 지식이 없으면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다양성과 경쟁력의 상관관계는 입증된 것인가? "내 전공 분야인 세균 집단을 보면 번식을 잘하는 세균과 번식을 거의 하지 않고 버티는 세균이 섞여 있다. 여기에 항생제가 투입되면 번식 중인 세균은 모두 죽지만 번식을 멈추고 있는 세균들은 살아남는다. 이들 덕분에 집단 멸종을 면한다. 한 집단을 구성하는 개체들이 동일한 형질을 갖고 있으면 환경 변화에 모두 멸종할 위험이 높다. 다양성이 생존 경쟁력의 필수 요인인 셈이다. 생존 연속이 가능해야 종(種)의 진화도 할 수 있다." ―조직 내 성비(性比)를 맞추는 게 우선인가, 아니면 유능한 인재를 뽑는 게 우선인가? 서울대 전임 여교수 비율이 낮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논문 실적 등 그 나름대로 교원 채용 심사 기준에 의한 결과라면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판단 기준의 겉과 속이 다르다. 가령 여성 지원자의 논문이 뛰어나면,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지도교수가 시키는 대로만 했을 거다. 앞으로 혼자서는 이런 수준의 논문을 쓸 수 있을까'라는 말이 은연중에 나온다. 제도는 공정해도 마음으로는 편향성을 갖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남성 심사위원에 대한 선입견 아닌가? "얼마 전 우리 학과의 교수 공채에 미국에서 공부한 최상급 여성이 지원했다. 면접 심사에서 '결혼은 언제 하느냐' '왜 한국말을 잘 못 하느냐'고 물었다. 그 뒤 합격 통보를 했는데 지원자가 거절했다. 미국 동부의 최고 대학으로 가버렸다. 그 지원자는 면접 과정에서 받은 그런 질문에 '과연 이런 환경에서 연구 생활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기분을 맛본 것이다." ―채용을 위한 면접 심사 자리니까 그렇게 질문할 수 있지 않은가. 지원자가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인 측면은 없다고 보나? "그런 질문은 뿌리 깊은 남성주의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는 대학에서 오래 같이 생활해왔으니까 이해하지만, 젊은 사람에게는 부정적으로 비칠 수 있다. 과거에는 교수들끼리 '여자 대학원생을 뽑아봐야 결혼하면 말짱 헛거'라는 말을 해왔다. 여성의 가사 노동이라는 짐을 덜어주는 노력을 하지 않고, 짐을 졌으니 우리가 뽑지 말자는 식이었다. '너희는 할 수 있다'고 격려하면서 키워야 하는데 말이다." 그녀는 1979년 서울대 자연과학대를 수석 졸업했다.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29세에 서울대 미생물학과 교수가 됐다. 서울대 자연과학대에서 역대 네 번째 여교수였다. ―실제 일상에서 본인이 여교수라서 차별이나 부당한 대우를 받았나? "학교 전체에서 여성이 너무 희소해 겪는 불편이 많았다.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여성 화장실이 격층(隔層)으로 있었다. 층마다 만들어달라고 하자, 학과에서는 '그런 공간이 있으면 실험실을 더 만들겠다'고 했다. 그 뒤 대학본부에 건의해 화장실이 생겼다. 개인적으로 차별을 받았다기보다 불편한 시선으로 나를 받아들였다." ―숫자가 많으면 경쟁 상대이지만, 적으면 배려받지 않는가? "안 해도 되는 배려를 하니까 오히려 더 불편했다(웃음)." ―대학은 아직 뒤떨어져 있지만, 우리 사회의 대다수 기관과 조직에서는 성비 구성은 개선되고 있다. 정작 문제는 사회 전반에서 생각의 다양성이 후퇴하고 있다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인터넷과 SNS가 발달하면서 모두가 한 방향으로 우르르 휩쓸려 가는 동조(同調) 현상이 커지는 것 같다. 자기 주견을 갖지 못한 채 남들이 하는 말이나 집단의 생각에 너무 쉽게 쏠린다." ―어느 정권이나 자기편 사람을 쓰는 경향이 있었지만, 현 정권에서는 유독 동일한 이념과 입장을 지닌 사람들로 인적 구성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귀를 잡고 있는 청와대 핵심 참모진은 386 운동권 출신으로 이뤄졌고, 정부 요직이나 정부 위원회, 공공기관도 대선 캠프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 국가 정책 결정이나 정무적 판단에서 획일적 집단 사고의 오류에 빠져드는 것 같다. "구성원의 다양화가 안 이뤄지면 획일적 판단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자신들끼리 똑같이 생각하니까 현실 상황에 대해 자기 잣대로만 해석하게 된다."

‘황우석 사태’ 당시 발표하는 장면.

[노정혜 서울대 교수는 어떤 인물?]

―이런 획일적 집단에는 어떤 유능한 인재가 들어가도 버텨내지 못한다. 다양성이 경쟁력이라는 걸 모를 리는 없다. 그럼에도 현실에서는 안 이뤄지는 이유가 뭘까?

"이론적으로는 알지만 실제 다른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내재적으로 원치 않기 때문이다. 서울대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요인 중 하나가 외국인 교수 비율이다. 외국인 교수가 국제화의 잣대이고 학생들에게 국제 표준을 배우게 할 기회가 된다는 걸 안다. 그래서 '글로벌화'를 내걸지만 외국인 교수는 고작 5%다. 지난 몇 년 동안 이 수치에 머물러 있다. 국제화 수치를 맞추기 위해 외국인 교수들을 불러오긴 했다. 하지만 정작 이들은 서울대에서 자신이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금방 깨닫는다."

―환영받지 못한다는 뜻은?

"외국인 교수들은 생활의 장(場)에서 구성원 일부로 못 들어오고 있다. 교수 간 대화에서 영어를 안 쓰고, 학교 공문서는 여전히 한국어 전용이다. 연구비 신청 양식도 우리말로 되어 있다. 이들은 대학 안에서 겉돌고 있다. 제도적으로 동일하게 동료 교수로 받아들인다고 하지만 실제 지내보면 차별과 고립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주거 환경이나 자녀 학교 문제에서도 이들이 뿌리를 내리는 걸 어렵게 한다. 그래서 대부분 왔다가 오래 못 버티고 되돌아간다. 외국인 학부생의 비율도 1.3%밖에 안 된다."

―화제를 옮기자. 2006년 황우석 줄기세포 논문 조사위원회에 참여했을 때 무엇이 가장 힘들었나?

"국민적 사랑과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스타 과학자'를 조사한다는 게 어려웠다."

―황우석을 지지하는 쪽에서는 서울대 조사위원회가 '천재 과학자를 매장했다'고 반발했는데?

"지지자들은 '그분이 잘못할 리가 없다'며 맹목적으로 추종한 것이다. 다행히 서울대 조사위원회에서 논문의 잘못된 점을 분명히 밝혀냈기 때문에 전체 과학계의 정직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때 매스컴에 나오면서 내 얼굴이 많이 알려졌다. 도처에 있는 황 박사의 열혈 지지자들 때문에 그 뒤 한동안 조심해서 다녔다."

―황우석 박사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여러 면에서 탁월한 능력과 인간적 매력을 지녔다. 하지만 과학자로서는 치명적 결함이 있었다고 본다. 과학은 객관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이다. 결론을 미리 내려놓고 데이터와 증거를 선별 조작하는 것은 과학의 기반인 진실성을 무너뜨리는 행위다. 그는 결론과 목표를 만들어놓고 그걸 입증하기 위해 데이터를 만들었다. 황우석 박사는 목표 지상주의의 불행한 예다."

―인사청문회를 할 때면 단골 메뉴로 나오는 게 '논문 표절'이다. 물론 후보자들은 '관행'이라고 해명해왔다. 심지어 교육부 장관이 된 김상곤씨조차 그렇다. 석사 학위 논문 표절 문제로 서울대에서 조사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논문 표절이 관행인 적은 어느 시절에도 없었다. 이들은 정치인이라서 어떤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학문의 세계에서는 정직해야 한다. 정직성이 없으면 다 허물어진다. 자신이 정직하게 노력하고 있는지 정직한 결과인지에 대해서는 본인 스스로가 가장 잘 안다."

―전공이 미(微)생물학인데, 인간과 미생물의 공통점은 뭔가?

"1965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자크 모노는 '대장균에서 참이면 코끼리에서도 참이다'라고 했다. 겉보기에 아주 달라도 세포를 이루는 분자 수준에서 보면 거의 같은 원리로 생명 현상을 유지한다는 뜻이다. 우리 인체 속에 있는 미생물은 세포 수보다 10배 이상 많다. 이런 단세포의 세균과 복잡성의 극치인 인간이 유전자 구성 물질에서 같다면 믿겠나. 유전 정보 암호도 동일하고 유전 정보가 발현해 자손에게 복제되는 원리, 신진대사의 기본 원리 등도 다르지 않다. 또 생물의 공통된 특징은 환경에 따라 적응하고 변해간다는 점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도 이 범주 속에 있다."

―본인이 자부하는 연구 실적은?

"세균이 생존하려면 환경 변화를 감지하고 적응해야 한다. 이런 메커니즘과 관련된 분자(分子)를 밝혀낸 것이다."

―다 밝혀냈나?

"관련된 분자 중 하나를 밝혀냈다. 30년간 연구해왔지만 모래알 같은 지식 하나 얻었다."

―그렇다면 허망할 텐데?

"그런 사소한 지식이 없으면 아무것도 없으니까. 단순해보이는 세균을 연구해도 너무 모르는 게 많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모두 오묘하다. 인간이라고 해서 무시할 만한 게 하나도 없다."

그녀는 여성과학기술자상(2006년)과 한국과학상(2011년)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