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일본 태생 영국인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대표작 'The Remains of the day'의 한국어 번역판 제목 '남아 있는 나날'이 오역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10월 18일 발언대). '그날의 흔적' '그날의 잔영' '그날의 기억' '그날의 유물(遺物)' 정도로 번역해야 옳다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여러 자료를 검토하고, 이 책의 내용을 잘 아는 원어민 인사들에게 자문한 바에 의하면 비록 완벽하지는 않을지라도 오역은 아니다.

우선 위키피디아(영문판)는 줄거리 설명에서 영국 귀족의 집사였던 주인공 스티븐스가 '소설의 끝에 가서 자신의 여생, 즉 새 주인 파러데이씨를 섬길 일과 자신의 남은 인생에 몰두한다'고 풀이한다. 그리고 남은 시간을 암시하는 시계 사진이 나오는 이 소설 초판의 표지 사진도 게재한다. 한 원어민 교수는 "The remains of the day"는 "The rest of his life"(그의 남은 인생)와 같은 의미라고 했다. 영국 문화의 해외 홍보 창구인 주한 영국문화원의 마틴 프라이어 원장도 'The Remains of the day'가 의미하는 것은 "주인공의 남은 인생과 등장인물들이 사는 더 큰 사회로부터 남은 것"이라고 했다. 2차 대전을 앞둔 이 시기는 영국과 유럽의 격동기였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remains'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the day'이다. 이를 단순히 '그날'로 번역한다면 이야말로 오역이다. 여기서는 주인공의 인생과 등장인물들이 살던 시대를 의미한다. 프라이어 원장은 'remains of the day'에는 '인생의 황혼기'란 뜻 외에 폐허가 된 건물 또는 시신이라는 이 단어의 다른 의미까지 함축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remains라는 단어의 두 의미(남은 것, 폐허)를 절묘하게 살린 희언법(戱言法·the play on words)이라며 이런 뉘앙스를 한국어 번역에서 잘 전달할 수 있을지는 한국어를 모르는 자신으로서는 판단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렇다면 '남아 있는 나날'은 오역이 아니다. 완전한 번역도 아니다. 우리말에 이 두 가지 뜻을 모두 살릴 단어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번역은 어려운 작업이며, 때로 차선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