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년 전 중국 상하이 연안에서 일본군이 모두 828명의 영국군 포로를 잔인하게 수장(水葬)·살육했던 일본 화물선 ‘리스본 마루(丸)’ 사건이 재조명되고 있다고, 영국 데일리 메일이 보도했다. 미군 잠수함의 공격으로 화물선이 침몰하자, 배가 완전히 침몰하기까지 이후 25시간 동안 포로들을 이송하던 배 안의 일본군은 포로들을 배 안에 가둬 익사시키고 탈출한 포로들에겐 기관총 세례를 퍼붓고 구명 보트로 밀어버렸다. 포로에 대한 윤리적 예우라곤 찾아볼 수 없었던 잔학한 범죄였다.

1942년 10월 1일, 강제노동에 동원하기 위해 영국군 포로 1834명을 태우고 동(東)중국해로 지나던 7000톤급의 ‘리스본 마루’는 미국 잠수함 그루퍼(Grouper)에 포착됐다. 배 안에 탄 일본군은 800여명. 일본군은 그 전달인 9월 홍콩을 영국으로부터 빼앗았고, 홍콩을 지키던 영국 스코틀랜드 보병연대와 포병부대원들을 포로로 잡았다.

영국군 포로 1800여명이 탄 일 화물선 '리스본 마루'가 침몰하는 것을 구명보트에서 지켜보는 일본군
미국 잠수함 그루퍼(Grouper)

미국 잠수함 ‘그루퍼’가 쏜 어뢰 첫발은 리스본 마루에 정확히 명중했다. 그러나 157초가 지나도, 어뢰는 터지지 않았다. 미 잠수함을 지휘하던 롭 로이 맥그리거 소령은 리스본 마루에 더 가까이 접근한 뒤 세 발의 어뢰를 추가로 발사했고, 네 번째 어뢰에 리스본 마루는 침몰하기 시작했다. 미 잠수함은 당시 이 배에 영국군 포로가 타고 있는지 몰랐다.

'리스본 마루'가 격침된 장소

이후 리스본 마루가 완전히 침몰하기까지 25시간 배 안팎에선 최악의 만행이 벌어졌다. 일본군은 침몰 와중에도 영국군 포로들을 살육하기 바빴다. 포로들을 한 공간으로 내몰고 잠가서 아예 ‘무덤’으로 만들었다. 가까스로 바다로 탈출할 수 있었던 영국군 포로들에겐 기관총을 퍼부었고, 보트로 밀어버렸다.

당시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던 몬태규 트레스콧은 “바다 속으로 뛰어든 뒤 주변에 있던 일본군 보트로 헤엄쳐 가는데, 일본군이 핑!핑!핑! 사격 연습이라도 하듯이 쏘아 댔다. 침몰하던 배로 되돌아 헤엄쳐 가야 했다"고 말했다. 일부 일본군은 바다에 빠진 포로들을 구해줄 것처럼 구명보트에 태우고 나서 ‘확인 사살’ 했고, 보트에 매달린 포로의 머리를 발로 차 바다로 밀어 넣었다고 당시 생존자들은 말했다.

포로들이 유일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어떻게 해서든 해안으로 헤엄쳐가는 것이었지만, 피 냄새를 맡고 상어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당시 생존자 잭 허그슨은 "함께 헤엄치던 동료가 ‘해안까지 못 가게 되면, 아내 메기에게 끝까지 살기 위해 노력했다’는 걸 전해달라고 했다”고 증언했다. 그 동료는 바다 속에 잠겼다.

이날 일본군의 만행으로, 1834명의 영국군 포로 중에서 828명이 숨졌다. 1912년 4월 15일 빙산과 충돌해 침몰한 타이타닉호 희생자 수(1514명)의 절반을 넘는 수였다. 데일리 메일은 타이타닉은 영화로도 제작됐지만, ‘리스본 마루’의 참극은 역사 속에 묻혔다고 보도했다.

전쟁 포로 예우에 대한 제네바 협약 등 국제법이 전혀 지켜지지 않은 만행이었지만, 전쟁이 끝나고 응징도 없었다. 당시 리스본 마루의 선장이 영국군 포로들이 있던 화물칸 문을 잠그도록 허용한 것과 관련해 7년 형을 선고 받은 것이 다였다. 그는 예상대로 법원에서 “군의 지시를 따랐을 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