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고문

문재인 정권의 노선과 정책들이 처음에는 ‘적폐’를 겨냥한 것으로 포장되더니 점차 정치 보복의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그의 정부가 공격의 대상인가 싶더니 이명박 정권의 것도 뒤지고 엎고 하는 것을 보니 ‘박근혜 싹 자르기’와 ‘노무현 원수 갚기’라는 ‘적폐’에 올인하는 것 같다.

박 전 대통령의 구속 연장을 계기로 정치 보복 논란이 전면으로 부상(浮上)하고 있고,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의 국정원 간부들을 구속하고 MB를 검찰에 불러 세우기로 한 것을 보면 문재인 사람들 역시 정치 보복의 적폐에서 못 벗어나는구나 하는 것을 느낀다. 그뿐 아니다. 전 정권과 관련된 공직자, 언론 경영인, 기업인들을 하나씩 소탕(?)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어느 시절의 '삼청교육대'가 연상된다. 주변에서는 "당신네 신문사 기자들은 괜찮은 것이냐?"며 지레 걱정을 해주고 우리 스스로도 '꼬투리를 제공할 행동들을 조심하자'고 하고 있는 실정이니 세월이 흘러도 권력의 속성은 같은 것이며 정치는 '이긴 자의 소유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치 보복에 관한 한 세계는 위대한 스승을 갖고 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이다. 그는 대통령에 당선되자 그를 고문하고 흑인을 탄압했던 백인 경찰관과 우익 관련자들에게 사면령을 내리면서 "그들은 나에게 모진 고문을 가하고 많은 사람(흑인)을 죽였지만 그것들은 정부가 시켜서 한 것이며 이제 흑인 정부가 새로운 질서를 잡아가기 위해서는 그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선언했다. 만델라는 선거 때 폭탄 테러를 감행한 무장 백인 극우 단체도 협상 테이블에 초대하고 "백인들이 소중히 여겨온 기념탑이나 기념물, 그리고 동상들을 허무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27년의 감옥살이를 겪고 마침내 350년 만에 백인 지배를 끝낸 흑인 최초 대통령의 선언이었다.

우리는 그 나라만큼 인종 대립도 없다. 그 나라만큼 종교적 갈등도 없다. 그 나라만큼 무자비하고 혹독한 철권 탄압도 없었다. 그 나라만큼 경제적으로 빈곤하지도 않다. 더 이상 폭력적 군사적 정권 교체(쿠데타)도 없다. 그런데도 그 나라만큼의 정치적 수용력도, 그 나라만큼의 계층 간 포용력, 화해력도 없어 보인다. 우리는 왜 안 될까? 더구나 우리는 5년이면 정권이 바뀌게 돼 있다. 오늘 우리가 어제의 것을 보복하면 5년 후 내일의 세력으로부터 또 보복당할 수 있다는 단순 산술을 우리는 왜 번번이 잊어버리는 걸까?

지난 정권의 정치에 문제가 없었다고 단정할 생각도 없고 현재로서는 옳고 그름을 판단할 자료도 없다. 과거의 것도 잘못된 것이면 벌 받아야 하고 또 고쳐야 한다. 하지만 이런 것에는 상식이 있고 정도의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미 정치적으로 죽은 전 대통령을 구속 연장까지 해가면서 뒤지고 까발리는 것은 탄핵과 퇴진에 못을 박고 기정사실화하고 그들의 집권을 '혁명화'하려는 의도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MB 대통령 때의 문제를 새삼 꺼내는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에 이르게 한 데 대한 앙갚음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이 마치 정의의 사도인 것처럼 자처하고 자신들은 이에 면역된 세력인 것처럼 행세하는 것은 사람들의 웃음만 살 일이다.

그것들은 새 정부가 앞으로 가야 할 정도(正道)의 진로를 가로막는 걸림돌이다. 문 대통령은 그들의 집권이 '혁명'이고 그래서 적폐 청산이 정당하다고 주장하지만 이런 걸림돌들을 뛰어넘느냐의 여부는 지도자의 자질과 역량의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문 대통령이 그의 5년을 의미 있는 진전으로 그려내고 싶다면 일체의 정치 보복적 행위를 그만둘 것을 천명하고 헌법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폭넓은 사면권을 행사할 것을 권고한다. 거기에는 박 전 대통령도 포함될 수 있다. 그것은 어찌 보면 그의 진보적 정책노선과 지난 보수·우파정권의 실적을 교환하는 것이다. 이승만·박정희에서 이명박에 이르기까지 전임 정권의 궤적을 보존·유지하면서 보수가 지닌 단점과 한계를 넘어 좌파의 기능주의(機能主義)를 역설적으로 접목하는 접근 방식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큰 그릇을 지닌 지도자로 거듭나는 길이다. 지도자가 됐으면 자기 것을 버릴 줄도 알고 남의 것을 취할 줄도 알아야 한다.

만델라가 말년에 남긴 말은 그런 의미에서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나는 평생 백인이 지배하는 세상에 맞서 싸웠다. 또한 흑인이 지배하는 사회에도 맞서 싸웠다. 인생의 영광은 넘어지지 않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서는 데 있다."

▲10월 24일 자 김대중 칼럼 ‘적폐 릴레이’에서 인용한 만델라의 말 “인생의 영광은 넘어지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인생의 영광은 넘어지지 않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로 바로잡습니다. 지적해주신 대구대학교 일어과 쿠리따 에이지 교수에게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