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노동조합 전 단계인 직장협의회 설립을 추진한다. 경찰대 학생과 간부 후보생 선발에서 여성 합격자 수를 제한하는 제도를 폐지하고 남녀 구분 없이 성적순에 따라 뽑기로 했다. 경찰청 산하 민간 자문기구인 경찰개혁위는 19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개혁안을 권고했고, 경찰은 이를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직장협의회는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등 노동 3권은 보장받지 못하지만, 근무환경 개선과 업무 능률 향상 방안 등을 협의할 수 있어 노조의 전 단계로 평가받는다. 일반 공무원의 경우 1999년 직장협의회 설립이 허용됐고, 2006년 공무원 노조가 생겼다. 경찰과 소방관은 국민의 생명과 신체, 재산을 보호하는 업무 특성상 현재까지 둘 다 금지돼 있다.

개혁위는 이날 "경찰관 80% 이상이 야간 근무를 하고 있고, 대부분 주 40시간을 초과해 근무하고 있다. 스스로 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경찰관에게 국민을 위해 헌신할 것을 강요할 수 없다"며 직장협의회 설립을 권고했다. 개혁위는 경찰 노조에 대해서는 "여건이 성숙되는 대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라"고 했다. 경찰은 "직장협의회는 도입하겠지만, 노조 설립은 국민적 우려가 있기 때문에 당장 구체적으로 검토할 단계는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경찰은 올해 말까지 행정안전부 등과 협의해 직장협의회를 설립할 수 있도록 관련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수사관과 경정 이상 간부 등을 제외하고 전체 경찰 11만5000명 중 9만2000여 명이 직장협의회에 가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경찰청 관계자는 "직장협의회는 결국 경찰 노조로 가는 전 단계"라며 "국민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해 조직 내부에서 이견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 미국과 유럽, 남미의 대부분 국가에서는 경찰 노조가 만들어져 정부와 임금 등 경찰 권익에 관한 사안을 교섭하는 일이 많다. 하지만 일부 국가에서는 경찰이 단체행동권을 행사해 파업에 나서면서 치안 업무가 마비되기도 한다. 브라질 경찰은 2014년 월드컵 개최를 앞두고 임금을 80% 이상 올려달라며 파업을 했고, 치안 공백을 틈타 폭력·약탈사태가 발생하면서 100명이 넘는 주민이 사망했다.

경찰은 개혁위 권고에 따라 2019년부터 경찰대 학생, 간부후보생 선발을 남녀 통합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현재 경찰은 매해 경찰대 신입생 100명 중 12명, 간부 신입후보생 50명 중 5명만 여성으로 뽑고 있다. 체력과 완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치안업무 특성을 고려한 것이다. 하지만 개혁위는 "경찰의 모든 업무가 범죄자 제압능력 등 신체적, 체력적 우위를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분리 모집은 성별 고정관념에 따른 것"이라며 통합 선발을 요구했다.

통합선발이 실시되면 여성 합격자 비율이 크게 늘 것으로 전망된다. 경찰 관계자는 "필기시험 점수만으로 선발할 경우 경찰대 합격자 남녀 비율은 3대 7 정도로 여성이 우세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 일선 경찰관은 "남녀 통합 선발이 경찰의 수사력을 떨어뜨리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대 관계자는 "현재 팔굽혀펴기의 경우 여자는 무릎을 땅에 대고 하도록 허용하고 있는데, 남녀 동일하게 모두 땅에 닿지 않고 하도록 바꿀 경우 여성 합격 인원은 오히려 더 줄 수도 있다"며 "남녀 모두가 납득할 만한 기준을 정하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