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라이온즈, 김득구‐ 그리고 100년의 고독

백년 동안의 고독
G.마르케스 지음 | 안정효 옮김 | 문학사상 472쪽 | 1만2800원

1982년이 시작되자 삼성 라이온즈 선수들은 경북 지역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인회를 벌였다. 김천국민학교에도 선수단이 온다는 소식에 나는 며칠 동안 기다렸다가 마침내 그들 모두의 사인을 받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팬클럽에 가입했다. 며칠 뒤, 어린이회원을 위한 선물 꾸러미가 집에 도착했다. 파란색 점퍼와 사자 마크가 부착된 파란색 모자, 그리고 하얀 가방이었다.1년 내내 입고 다녀 너덜너덜해진 파란색 점퍼와 모자를 쓰고 나는 그해 코리안시리즈에 임했다. 삼성 라이온즈와 OB 베어즈의 대결이었다. 10월 5일에 열린 1차전은 삼성의 승리. 하지만 이후 5차전까지는 1무 3패였다. 한 번만 더 지면 OB의 우승이 결정되는 상황에서 두 팀은 6차전을 치렀다. 3대3 동점이던 9회 초, 삼성의 투수 이선희는 만루 상황을 맞이했다. 다들 MBC 청룡과의 개막전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 경기에서 이선희는 굿바이 만루홈런을 맞았고, 덕분에 내 팬클럽 역사는 암울하게 시작됐다. 설마 또 만루홈런은 아니겠지? 그건 너무 가혹하잖아. 이선희에게도 그렇지만 내게도. 타석에는 신경식이 들어왔다. 결과는 볼넷 밀어내기. 적어도 만루홈런은 아니라고 안심하던 찰나….코리안시리즈가 끝난 뒤, 나는 인생에 대해 조금 알게 됐다.

그리고 며칠 뒤,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됐다. 한 신문의 표현에 따르면 '좌익 망명 작가'인 콜롬비아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당시 55세)씨가 그 주인공. 노벨문학상이란 먼 유럽의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는데 김천의 서점에도 그의 소설이 들어왔다. 지금은 '백년의 고독'이지만, 당시에는 '백년 동안의 고독'이었다. 백년 동안의 고독에 비하면, 한 해에 만루홈런을 두 번 맞는 건 그다지 고독한 일 축에도 들지 못하리라. 내가 그 소설을 읽은 건 대학생이 된 뒤였다. 노벨문학상 붐을 일으킬 만큼 '백년 동안의 고독'은 큰 인기였기 때문에 당시에도 읽을 수도 있었겠지만, 초등학생이던 내가 얼음에 손바닥이 불타고, 서커스 행렬을 보고 죽음을 예감하며, 발치까지 밀려든 아들의 피를 보는 인물들을 이해했겠는가. 그럼에도 나는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 '백년 동안의 고독'이라는 그 제목에 인간의 삶에 대한 어떤 비밀이 숨어 있으리라는 것을.

소설도 읽지 않은 내가 그 제목의 의미를 이해한 것은 코리안시리즈가 끝나고 한 달 뒤였다. 11월 14일 일요일 오전, 나는 미국 라스베이거스 시저스팰리스 호텔 특설링에서 벌어지는 레이 맨시니와 김득구의 권투 경기를 보려고 일찌감치 일어나 있었다. 잘 싸우던 김득구는 10회가 지나면서 흐느적거리기 시작했고 결국 14회가 되자 링에 쓰러졌다. 링에서는 다시 일어났지만, 패배해 링을 떠난 뒤 그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1982년 내가 응원한 모든 선수는 패배했다. 나는 파란색 점퍼와 모자를 벗었다. 그렇게 나의 유년 시절이 끝났다.

김연수·소설가

근사한 흰 양, 나는 솔방울로 값을 치렀다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파블로 네루다 지음 | 정현종 옮김 | 민음사 | 64쪽 | 8500원

내가 갖고 있는 파블로 네루다의 시집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는 1990년에 산 것이다. 문학청년이던 대학교 2학년 때다. 이제는 한 장 한 장의 시집 갈피가 가을 나뭇잎처럼 되고 말았다. 조심해서 다루지 않으면 손바닥 안에서 바스락거리다 부서질 것 같다. 나는 매번 이 시집을 펼쳐 몇몇 시구(詩句)를 반복해서 읽는다.

"나는 터널처럼 외로웠다. 새들은 나한테서 날아갔다."(시 '한 여자의 육체…'), 혹은 "아 사랑이 울려내는 네 신비한 목소리는/ 반향하며, 숨 막히는 저녁 속에 어두워진다!/ 그렇게 깊은 시간 속에서 나는 보았다, 들판에서/ 밀의 귀들이 바람의 입속에서 울리고 있음을."(시 '아 소나무숲의 광활함'), 혹은 "오늘 밤 나는 쓸 수 있다 제일 슬픈 구절을.//(……)//광대한 밤을 듣거니, 그녀 없어 더욱 광막하구나./ 그리고 시(詩)가 영혼에 떨어진다 목장에 내리는 이슬처럼.// 내 사랑이 그녀를 붙들어놓지 못한 게 뭐 어떠랴./ 밤은 산산이 부서지고 그녀는 내 옆에 없다."( 시 '오늘 밤 나는 쓸 수 있다…')라고 쓴 시구를.

한 시인은 네루다의 놀라운 시적 재능을 "무의식적 현재에 잠깐씩 사는 재능"이라고 말하면서, "의식의 밑바닥에 있는 육중한(대량의) 물질들"을 들이마시며 사는 "심해(深海)의 게"에 빗댄 적이 있다. 네루다의 시는 처음 느껴보는 이상하고 신비한 질감의 언어들로 꿈틀거린다.

네루다는 1904년 남칠레 국경 지방에서 철도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스무 살 때에 남미 전역을 대표하는 시인이 되었다. 중국, 인도, 스페인, 아르헨티나, 멕시코 등의 나라에서 영사를 지냈고, 칠레의 상원의원이 되어 정치가로도 활동했다. 그의 시는 불행과 절망에 대해 노래했고, 가난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다. 독재자와 파괴자에 대항하면서 모국인 칠레가 밝은 빛의 미래 속에 있기를 희망했다. 그리고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에 대한 친밀감을 표현했다. 1971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네루다는 1973년 세상을 떠났다.

네루다는 어린 시절에 겪은 하나의 일을 인상적으로 회고한다. 집 뒤뜰 담장에 구멍이 하나 있었는데 어느 날 그 구멍 속으로 자기 또래로 보이는 아이의 손이 홀연히 나타나 근사한 흰 양을 놓고 갔다고 한다. 네루다는 곧장 집으로 가 자신의 보물인 "벌어지고, 솔 냄새와 송진으로 가득 찬 솔방울"을 가져다 구멍 위에 올려놓고 흰 양과 맞바꿨다고 한다. 이 일은 네루다로 하여금 인류가 하나라는 것을, 모든 관계가 선물의 주고받음의 관계라는 것을 깨우쳐주었다고 한다. 생명들의 사랑에 바친 명편의 시들은 이 작은 일화로부터 탄생했다고 해도 좋겠다.

정현종 시인의 유려한 번역이 돋보이는, 내가 수시로 펼쳐 보는 네루다의 이 시집은 해진 옷소매처럼 닳고 낡았지만 시 정신만큼은 야생 그대로의 그것으로 살아 있다.

문태준·시인

겨울 햇살에 말리는 모시처럼‐ '설국'은 눈의 냉기를 품고 있다

설국
가와바타 | 야스나리 지음 | 김진욱 옮김 | 범우사|306쪽 | 6000원

소설 속에 '눈바램'이란 말이 나온다. 여름에 입는 모시를 눈이 깊숙이 덮인 논이나 밭에 펴 널어 아침 햇살이 밝게 내리비칠 때까지 여러 날 동안 바래기를 하는 것이다. 추위 속에 눈바램한 모시는 찬 기운을 품어 더운 여름에도 살결에 서늘한 촉감을 준다고 한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설국의 문장들에 눈바램을 한 것만 같다. 언제까지나 찌르는 듯이 맑고 차가운 눈의 냉기를 품고 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면 고마코의 말처럼 눈알이 시리다. "한기가 별을 맑게 닦아내듯", 홀로 자신을 조형해가는 고아 의식이 존재의 윤곽 속에 검은 얼음처럼 빛나는 것이다. 그는 젊은 시절 세칭 신감각파를 주창했는데, 경험의 단면을 감각적으로 파악하여 현실이 아니라 자신에게 비친 세계를 형상화하려는 시도였다. 거의 100년 전의 일이니 당시로선 자연주의 문학의 한계를 뚫고 나가려는 전위적인 실험이었다. 그래서 밤 기차의 차창에 비친 풍경 위로 떠오른 요코의 눈동자에 겹친 불빛과 여관방 거울에 비친 흰 눈과 고마코의 붉은 뺨 같은 감각의 조각들과 처음 방문한 날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몰려가 잔치를 열고 있던 누에고치 창고 겸 가설극장 같은 복선의 조각들이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소설을 끌어가는 진정한 동력인 것이다. 가와바타는 '설국'에 이르러 자신이 연마한 신감각적 표현 방식으로 유자와 온천 마을의 사실적 풍물을 담아내는 데에도 성공하면서 일본 문학의 전통을 현대어로 재탄생시켰다는 극찬을 받았다.

1935년부터 1947년까지 여러 문예잡지에 발표했던 단편 12편을 모아 1948년에 출판했다고 하니 총 13년이 걸린 셈이다. 흔히들 그 기간 동안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며 조탁했다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엔 작품이 서랍 속에 갇혀 있었던 유예의 시간 같다.

일본의 침략 전쟁 기간 동안 작가는 한없이 무력했을 것이다. 소설 속을 떠도는 헛수고라는 말은 단순히 허무적 언사 같지는 않다. 동시대인들이 광기와 같은 침략 전쟁에 빨려들어 일제히 한 방향으로 밀고 밀리며 달려가던 시대에 작가는 홀로 자기 시대와 인간사를 빠져나가 적막하고 맑고 차가운 설국의 세계를 빚은 것이다. 그런 시대엔 서정성과 순수 탐미야말로 굉장한 저항이 아니었을까.

지금 설국을 꺼내 읽는 것은 위험한 일일 수도 있다. 엄연히 지난 세기 초중반에 쓰인 작품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시마무라의 남성 의식을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도 세 번의 방문이 이루어진 삼년의 시간 속에서 시마무라와 고마코가 함께하는 임시적 관계와 아름다운 대화는 남녀 사이의 어떤 원본 같은 데가 있다. 그것이 어찌할 수 없는 지난 시대의 사실성인지 우리 소설의 윗세대에서 변주되어온 기시감 탓인지는 모르겠다.

'설국'을 읽고 에치고유자와에 찾아가지는 말라고 조언하고 싶다. 거긴 거의 아무것도 없다. 설국의 아름다움은 가와바타의 문장의 아름다움인 것이다. 하지만 굳이 가는 사람은 말리지 않겠다. 그는 소설 속 공간의 구도 속에서 지내고 올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돌아와서 다시 '설국'을 읽을 때 그제야 제대로 읽는 기분이 들 것이다.

전경린·소설가

중년에 다시 읽는 '데미안', 알을 또 깨뜨린다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 안인희 옮김 | 문학동네 | 230쪽 | 8000원

'데미안'은 지난 세기 동안 가장 널리 읽힌 헤세의 대표작이다. 이 소설을 다시 읽으며 젊었을 때와 사뭇 느낌이 달라 놀랐다. 알과 새의 우화, 아프락사스, 카인처럼 이마에 낙인이 찍힌 데미안, 구원의 모성을 상징하는 에바 부인이 새롭게 다가왔다. 고등학교 시절 얼마나 자주 '데미안'의 작중인물에 나를 투사하며 몽상에 빠져들곤 했던가. 방황하는 싱클레어에게서 내 못난 모습을 발견했다. 아, 이것은 남의 얘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구나! 불안과 회의 속에서 인생을 망칠 거라는 나쁜 예감과 싸우면서 '데미안'을 읽었던 탓이다.

헤세는 신학교의 규율에 적응하지 못해 중퇴하고 시계 공장과 서점 점원을 전전하며 작가로 성장했다. 자살 기도와 신경쇠약 치료를 받았다. '데미안'은 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19년에 처음 나왔다. 헤세는 에밀 싱클레어라는 20대 무명작가를 내세워 소설을 펴내 큰 성공을 거둔다. 작가가 누구냐는 소동이 일자 한 평론가가 '데미안'의 문체를 분석해 이 소설이 헤세의 것임을 밝혔다. 헤세는 에밀 싱클레어가 가공의 작가이고 '데미안'은 자기가 쓴 것이라고 고백했다. 헤세는 '데미안'으로 받은 폰타네상을 반납했다.

이 영롱한 소설은 어둠 속의 빛, 혼란 속의 질서, 불안 속에서의 자기 자아를 찾으려는 싱클레어의 궤적, 욕망의 대극(對極)에서 사랑과 이데아를 찾는 구도(求道)의 여정을 따라간다. 누구나 똑같은 심연, 똑같은 시원, 똑같은 어머니에게서 나오지만 제각각 다른 길을 간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인생이란 "길의 추구, 오솔길의 암시"일 테다. 주인공은 낮과 밤, 선과 악, 혼란과 질서로 나뉜 세계의 경계를 지나오는데, 이 둘로 나뉜 세계는 자아가 품은 양면이자 세계를 지배하는 권력의 두 양태를 보여준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라는 문장은 내 안의 낯선 신을 깨우고, 심장을 뛰게 했다. 싱클레어의 멘토인 데미안은 신과 악마를 동시에 품은 인물로 아프락사스와 포개진다. 싱클레어는 혼란을 겪으며 짐승처럼 떠돌다가 제대로 된 삶을 살려면 "아버지와 스승에게서 떨어져 나와" 한 걸음을 떼어야 함을 깨닫고, 마침내 내적 자아가 "바깥에서 내게 온, 찾아야 할 신"과 하나로 결합하는 데 이른다.

헤세의 소설은 60개가 넘는 나라에 소개되고, 1억5000만부가 팔려나갔다. 한때 미국의 히피들 사이에서 헤세를 '성자(聖者)'로 경배하며 헤세 소설을 바이블처럼 끼고 다니는 게 유행이었다. 싱클레어의 불안과 고통으로 얼룩진 성장의 도정(道程)은 헤세가 질풍노도 시절에 겪은 고통과 판박이처럼 겹쳐진다. '데미안'의 공감력은 젊은이가 겪는 성장통의 원형을 투명하게 그려낸 데서 비롯된다. '데미안'을 읽는 것은 시대를 뛰어넘는 청춘의 권리이자 특권이리라.

장석주·시인, 문학평론가

어머니 넘어 인간의 삶‐ 이 시대의 '오란'을 기억하며

대지
펄벅 지음 | 안정효 옮김 | 문예출판사 | 470쪽 | 1만2000원

'대지'는 중국의 농부 왕룽이 역사적인 격변 속에서 소농과 도시 빈민을 거쳐 대지주에 이르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장편이다. 생후 3개월부터 중국에서 중국인들과 함께 살며 한문을 공부하고 중국 소설을 읽었던, 작가 펄 벅(1892~1973)의 경험과 감각을 바탕으로 쓰인 작품이다. 1938년에 펄 벅은 왕룽의 아들과 손자의 이야기인 '아들들'과 '분열된 가족'을 발표하였고 그해의 노벨문학상을 받는 영예를 안았다. 한국에는 1936년에 '상록수'의 작가 심훈의 번역으로 작품의 초반부가 소개된 바 있다.

많은 사람이 알고 있듯이 '대지'는 농부 왕룽과 그의 아내 오란의 이야기이다. 빈농인 왕룽에게 땅은 생명이 잠재되어 있는 원초적인 공간이며 이상적인 가치이다. "왕룽은 이따금 허리를 굽히고는 손으로 흙을 긁어모아 쥐었다. 그렇게, 한 줌의 흙을 쥐고 있으면 손가락 사이에 생명이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땅에 대한 외경심을 지닌 성실한 농부였던 왕룽은 오란과의 결혼을 통해서 토지 소유자가 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오란이 제공한 노동력과 조언들 그리고 그녀가 발견한 엄청난 보물이 왕룽을 대지주로 이끈다.

표면적으로 작품의 주인공이 왕룽인 것처럼 보이지만, '대지'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오란이다. 황 부잣집의 하녀였던 오란은 전혀 예쁘지 않았고 전족도 하지 않았다. 왕룽은 돈을 주고 오란을 사서 결혼한 터였다. 결혼 후에 오란은 병든 시아버지를 수발하며 가사 노동을 도맡았고 왕룽과 함께 농사를 지었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아이를 낳고, 자기의 손으로 산후 뒤처리를 하고, 혼자서 아이를 씻긴 여인. 극심한 기근 속에 딸을 낳게 되자 자신의 손으로 갓난아이의 목을 졸라야 했던 여인. 오란은 매매의 대상이었고 노동하는 기계였고 출산하는 짐승이었다.

오란은 자신을 주장한 적도 없고 억압에서 벗어나려는 의지를 보인 적도 없다. 신분제 아래에서는 하녀였고 가부장제 아래에서는 노동과 출산을 담당하는 동물적 존재였을 따름이다. 오란은 노동과 생산을 통해서 왕룽을 대지의 소유자로 만들어 주었지만 그녀에게는 보상이나 존경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녀는 묵묵히 살아갈 따름이다. 침묵 속에서 대지를 일구었고 세 아들을 낳았고 장남을 혼인시켰다. 그러고는 젖가슴은 처지고 머리숱은 얼마 남지 않은 보잘 것 없는 모습으로 죽었다. 대지로 돌아간 것이다.

오란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그녀의 헌신과 희생을 여성이나 모성의 표상으로 수렴해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란의 죽음 이후에 펼쳐지는 아들과 손자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오란의 동물적인 노동과 침묵을 통해서 역사의 대지가 마련된다. 하지만 오란의 삶은, 광활한 대지를 떠돌다 쓰러져가는 한 마리 짐승의 경우처럼, 그 누구에 의해서도 기록되거나 기억되지 않는다. 다만 소설 '대지'가 오란의 그 묵묵한 노동에 대한 기록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을 따름이다. 살아가는 것이 삶이었던 오란의 삶 앞에서, 그러한 오란의 삶을 언어로 그려낸 작가의 정신 앞에서, 잠시 책장을 덮고 숨을 고른다. 문득 우리 시대의 오란이 조금 전까지 옆에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김동식·문학평론가, 인하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