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이 지난 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신원 미상의 여성 2명에게 습격을 받은 후 남성 2명의 안내를 받으며 걸어서 공항 내 진료소로 향하고 있다.

지난 2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독극물 테러를 당한 뒤 사망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은 테러 직후 두 눈을 꼭 감은 채 자신의 머리를 움켜쥐고 있었다는 현장 증언이 나왔다.
 
3일(현지시각) 미국 CNN 보도에 따르면, 전날인 2일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해당 사건 형사재판 1차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당시 공항 내 진료소 의사 닉 모흐드 아즈룰은 김정남의 마지막 모습에 대해 "낯빛이 매우 붉었으며 엄청나게 땀을 흘렸다"며 이같이 증언했다.
 
사건 당시 김정남의 응급처치를 담당한 닉 모흐드는 이날 재판에서 당시 김정남의 상태에 대해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그에 따르면 테러 직후 김정남이 공항 진료소로 직접 걸어들어와 도움을 요청해 김정남의 얼굴에서 "냄새가 없는 물같은 액체"를 닦아냈다고 한다.
 
닉 모흐드는 "(당시) 김정남의 심장박동은 굉장히 빨랐으며, 혈압은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수준'이었다"라고 했다.
 
그는 김정남이 진료소로 들어선 후 발작을 일으켰다며 "그는 (전신발작 중 가장 심한 발작형인) 강직간대 발작을 일으켰다. 눈동자는 위로 올라간 상태였고 침을 흘리고 있었다. 우리가 불러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라고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그는 이어 "김정남의 체구가 커서 스태프 여러명이 함께 그를 들어서 (진료소) 안으로 이동시켰다"며 "그러나 몸집이 너무 커서 그를 들어 침대에 눕힐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김정남을 진료소 내부로 옮긴 후 의료진은 그에게 아드레날린 및 다른 약품을 투여해 발작을 멈추게 했지만, 이후 그는 쇼크 상태에 빠졌으며 혈압은 급락했다고 닉 모흐드는 증언했다.

김정남은 클리닉에서 약 1시간 가량 머문 뒤 구급차로 인근 푸트라자야 병원으로 후송되던 중 사망했다.

1차 공판 다음날인 3일 열린 2차 공판에서 나온 병리학자의 증언도 닉 모흐드의 증언을 뒷받침했다. 말레이시아 정부 소속 병리학자 누르 아쉬킨 오스만은 이날 법정에서 “김정남의 혈액을 분석한 결과 혈중 콜린에스테라아제 효소 농도가 리터당 344개로 정상치(리터당 5300개)에 크게 못 미쳤다”고 진술했다.

콜린에스테라아제 효소는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을 분해하는 역할을 하며, 부족할 경우 근육 마비가 초래된다. 누르 아쉬킨은 “김철(김정남의 가명)의 시신에서 발견된 효소가 정상치보다 적었던 것은 살충제나 신경작용제 같은 독에 의한 것일 수 있다”며 “VX 신경작용제에 노출되면 땀을 뻘뻘 흘리거나 구토를 하는 등 증상을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테러 직후 김정남이 엄청난 양의 땀을 흘렸다는 의사 닉 모흐드의 현장 증언과 맞물리는 부분이다.

2차 공판엔 김정남의 시신을 직접 부검한 모하마드 샤 마흐무드가 증인으로 출석해 “김정남의 얼굴 뿐 아니라 눈과 혈액, 소변, 의류, 가방 등에서 VX 신경작용제가 고루 검출됐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모하마드는 김정남이 뇌의 일부와 양쪽 폐, 간, 비장 등이 충혈되거나 부어오르는 등 손상된 상태였다면서 "사인은 급성 VX 신경작용제 중독"이라고 밝혔다.
 
이번 재판의 피고인은 김정남을 암살한 혐의로 기소된 2명의 여성인 인도네시아 국적의 시티 아이샤(25)와 베트남 국적 도안티 흐엉(29)이다.
 
이들은 지난 2월 13일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손으로 김정남의 얼굴에 치명적인 신경작용제인 VX를 발라 사망케 한 혐의를 받고 있지만, "TV쇼 촬영을 위한 몰래카메라라는 북한인 용의자들의 말에 속았다"며 관련 혐의 일체를 부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