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를 하며

- 어머이 아무래도 안 되것소. 한두 해도 아니고 점점 더 무성해져가는 이놈의 칡 땜시 못살것소…… 남들 보기도 그렇고, 아무래도 날 받아서 이장해야 안 되것소

- 아야, 그런 것만은 아니다. 너그 아부지 갑자기 간 지 이십육 년이 넘지 않았냐. 맨손으로 시작혀서 너그들 넷 그동안 별 탈 읍시 핵교 마치고 직장 잡아 돈벌이하며 결혼해서 새끼 낳고 이맨치라도 사는…… 다 너그 아부지가 너그들한테 미칠 세상에 얽히고설킨 온갖 근심과 모진 풍파 여기서 이렇게 온몸으로 다 끌어안고 있어서 그런 거이다. 구시렁거렸쌌지만 말고 쉬었거든 옆 묏동 칡도 저만치 걷어내그라

―곽효환(1967~ )('지도에도 없는 집', 문학과지성사, 2010)

추석 성묘차 벌초하러 간 사 남매 중 맏이와 칠순 노모가 나눈 대화의 한 대목이다. 이 일가족의 벌초는 기승전 칡과의 전쟁이다. '칡 줄기를 걷어내고 칡뿌리를 찾아 뽑'고 또 뽑아도 예초(刈草)의 속도는 번식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 오죽하면 만수산 드렁칡이라 했을까. 무덤가 두렁두렁 무성한 이 칡줄기 칡뿌리가 자식들에게는 노역의 화근이지만, 칠순 노모에게는 이십육 년 전에 먼저 간 남편의 육신만 같다. 자손들의 근심 걱정 풍파를 대신 끌어안아 준 남편의 보살핌 같고, 그 희생의 제물 같다. 노모의 이런 속 깊은 정과 무한 긍정으로 자손들이 흥성했겠으나 노모는 그 덕 또한 먼저 간 남편에게 돌린다. 이런 벌초도 '우리 세대의 마지막 유업'일지 모른다. 가을 벌초길, 보라색 칡꽃 한창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