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북한과 2~3개의 채널을 열어두고 있으며 대화 의지를 탐색하고 있다고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그제 밝혔다. 중국을 방문한 틸러슨 장관은 시진핑 중국 주석과 회담 후 "북한과 소통 라인을 가지고 있다. 블랙아웃(대정전) 같은 암담한 상황은 아니다"고 했다. 미 국무장관이 대화 채널 개수까지 언급하며 양자(兩者) 협상 가능성을 시사한 것은 처음이다. 특히 틸러슨은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멈추면 상황이 많이 진전될 것"이라는 말로 대화의 구체 조건을 언급했다. 미·북 간에는 미 국무부와 유엔 주재 북 대표부 간의 소위 '뉴욕 채널' 외에도 최근 사망한 미 대학생 웜비어 송환을 계기로 다른 대화 통로가 만들어졌다.

틸러슨 장관 발언은 '6·25 이후 최대 위기' 상황이 결국 미·북 양자 간 협상으로 귀결될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북한이 핵·미사일과 재래식 전력으로 숱한 도발을 감행했음에도 지금까지 건재한 것은 남한을 인질로 잡고 있기 때문이다. 유사시 북의 반격으로 인한 피해가 우려되기 때문에 북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조치는 현실적이지 않다. 북한이 더욱 정교한 핵을 갖게 된 지금은 더욱 그렇다. 북으로서도 대량살상무기를 동원한 군사적 도발을 감행하는 순간 정권이 끝장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함부로 행동할 수 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현 위기를 군사 옵션보다는 북한과의 협상을 통해서 풀려고 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우리 정부도 모르는 사이 미·북 간 막후 협상이 진행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 달 3일부터 한·중·일을 비롯한 아시아 5개국 순방에 나서는데 이를 계기로 모종의 발표가 나올지 모른다는 관측도 있다.

문제는 6차 핵실험까지 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완성도를 높인 김정은이 이 상황을 내다보고 있었을 것이란 사실이다. 애초부터 자신의 몸값을 최고로 올려놓고 전격 대화로 전환하겠다는 속셈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북 대화는 위기 상황을 근원적으로 해결하기보다는 23년 전 제네바 합의처럼 사태를 봉합하는 것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으로선 ICBM만 막아 자기들 본토의 안전만 확보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 결말이면 북핵은 동결(凍結) 수준에서 사실상 공인되고 우리는 영원히 김정은의 핵 인질을 면할 수 없다. 국내 좌파 세력은 이를 '평화'라며 여러 방면에서 대북 지원에 나서려 할 것이다.

미·북 협상이 핵을 가진 김정은 체제를 인정하는 결과가 되는 것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 그런 식으로 흘러가게 된다면 우리도 독자 핵무장이나 전술핵 재배치, 핵 공유로 가는 수밖에 없다. 정부는 미·북 협상을 무조건 반길 일이 아니다. 미국의 움직임을 정확히 파악해 최악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