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윤 음식전문기자

황해도 봉산 출신인 우리 친가의 명절·잔치 음식 삼위일체(三位一體)는 만둣국·삼겹살·빈대떡이다. 셋 중 하나라도 빠지면 섭섭하지만, 가장 중요한 음식을 꼽으라면 단연 만둣국이다. 설날 떡국 대신 만둣국이 올라오는 건 물론이고 추석에도 만둣국이 올라와야 명절 상차림다운 느낌이다.

만두를 얼마나 자주 그리고 많이 해 먹느냐면, 얼마 전 돌아가신 큰아버지 댁에는 만두 전용 '짤순이'가 부엌 뒤편에 있었다. 모르는 독자를 위해 부연하자면, '짤순이'는 빨래 넣고 물기를 제거하는 기계이다. 큰아버지 댁 짤순이는 세탁물 물기 제거용이 아니었다. 오로지 두부며 김치며 숙주 따위 만두소 재료의 물기를 짜내기 위한 짤순이였다.

만두는 미리 빚어두지 않았다. 먹기 바로 전 만들어 삶아야 맛있기 때문이다. 만두를 짧은 시간 대량 생산하려면 온 가족이 달라붙어 만들어야 했다. 추석이나 설날 식사 두세 시간 앞두고 집 안은 만두 공방(工房)으로 변했다.

우리 집에서 만두를 빚는 건 남자들의 일이었다. 여자들은 다른 명절 음식 준비하느라 바빴다. 큰아버지·아버지·작은아버지·사촌 형·동생들과 거실에 널찍한 목판과 밀대, 밀가루 통을 들고 자리 잡으면 큰어머니·엄마·고모들이 커다란 양푼 두 개를 내왔다. 양푼 하나에는 밀가루 반죽, 다른 양푼에는 만두소가 잔뜩 담겨 있었다.

나와 사촌 등 '아랫것'들이 힘든 만두피 밀기를 맡았다. 얇게 민 밀가루 반죽을 주전자 뚜껑으로 눌러 동그랗게 만두피를 오려내면 조금 덜 힘들다. 하지만 우리 집에서 이런 '편법'은 안 된다. 만두피가 입안에서 노는 감촉이 다르단다. 오로지 밀대로 밀어서 만두피를 펴야 한다. 송편처럼 두꺼워서는 물론 안 되지만 그렇다고 너무 얇아서 씹는 맛이 죽어도 안 된다. 만두라면 입맛이 귀신들이다.

만두 빚기는 아버지와 큰아버지·작은아버지 등 어른들의 작업이었다. 모두 잘 빚으시지만, 큰아버지는 속도나 기교가 발군이셨다. 큰아버지는 "6·25 터지고 부산으로 피란 갔을 때 화교가 하는 중국집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만두 빚기를 배웠다"고 했다. 한 손바닥에 만두피를 놓고 소를 얹고 양손을 살짝 어긋나게 맞잡으면 만두 하나가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작은아버지는 만두피를 완전히 밀봉하지 않고 양 끝 귀가 살짝 열리게 했다. "이렇게 해야 끓일 때 육수가 스며들어 더 맛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큰아버지는 그러나 "국물이 탁해진다"며 반대하셨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보통 이북 만두는 큼직하다. 우리 집은 중국집 군만두 정도 크기다. 만두소에 넣는 김치는 물로 고춧가루를 씻어낸다. "벌거면 상스럽다"고 했다. 만두용으로 고춧가루 넣지 않은 배추김치를 따로 담그기도 했다. 배추김치와 데친 숙주, 두부를 꼭 짜서 간 돼지고기와 섞어 소를 만든다. 국물은 소고기가 아니라 닭고기로 낸다. 큼직한 닭으로 육수를 낸다. 닭은 건져 살을 쪽쪽 찢고 파·마늘·고춧가루에 무쳐 꾸미를 만들어둔다. 육수가 식으면 동동 뜬 닭 기름은 깨끗하게 건져낸다. 만두가 다 빚어지면 육수를 다시 불에 올린다. 팔팔 끓으면 만두를 넣는다. 돌아가신 할머니는 "냄비 바닥에 가라앉은 만두가 떠오르면 다 익은 것"이라고 끓일 때마다 말씀하셨다.

만두가 익으면 대접에 국물과 함께 담고 준비해둔 닭고기 꾸미를 얹어 상에 낸다. 상에는 고춧가루·마늘·파를 섞은 다진 양념과 함께 식초가 놓인다. 식초를 살짝 두르면 맑은 닭 육수 속에 감춰져 있던 감칠맛이 화사하게 드러난다. 만두가 한두 알 남았을 때, 국물에 밥을 자작하게 말아 먹으면 그 맛이 또 기막히다.

만두를 약간 도톰한 피로 크지 않게 빚고, 닭 육수에 끓이고, 식초로 간을 맞추는 건 일반적인 이북 만두와 다른 우리 집 만두만의 특징이다. 만둣국을 왜 이렇게 끓이고 먹게 됐는지는 잘 모른다. 여러 지역과 집안 만두를 취재하기도 하고 문헌도 찾아봤지만 똑 부러지는 설명은 얻지 못했다.

그런데 우리 집 만두는 크기라든가, 닭 육수를 쓰고 식초를 친다든가 하는 점에서 중국의 만두 문화와 비슷하다. 할머니는 "너희 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가 평안도 신의주에서 사업하면서 만주(滿洲)를 다니셨다"는 얘기를 자주 하셨다. 그때 중국에서 드신 경험이 영향을 준 걸까, 아니면 큰아버지가 부산 화교 중국집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습득한 노하우가 녹아든 걸까. 어쨌건 만둣국에는 우리 집안만의 식문화가 담겨 있다.

올해는 아버지 생신이 추석 연휴에 끼어 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다른 선물 필요 없으니 생일날 만두 해달라"고 했다. 어머니는 내게 "그날 좀 일찍 오라"고 했다. 만두피 밀 생각을 하니 벌써 팔이 아프다. 하지만 야들야들한 만두피와 따끈한 닭 육수의 그 황홀한 조합을 떠올리며 '그래, 힘들어도 빚어 먹어야지' 되뇐다. 나도 아버지처럼 우리 집 만둣국에 중독된 모양이다.